목록2018/04 (12)
저녁의 꼴라쥬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세계관, 또는 스스로의 준칙 정도라고 생각해두자.그런데 '이래야만 한다'가 점차 굳어지게 되는 것은 인간의 비극적인 습성인 듯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래야만 함' 때문에 부딪히거나 서로를 회피하게 된다. 그야말로 스스로의 준칙으로서의 세계관이 마치 법칙이 되는 양 행동하고자 하는 스핀이 너무도 자주 걸리는 것이다. 나 자신도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을 판단하거나 스스로를 옭아맬 때가 많다. 사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의해서 막다른 길까지 내몰리고 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없음에도 스스로가 만든 것이 돌처럼 딱딱하게 경화되기 전까지 마치 그러한 것이 있는 양 그 안에서 존재하고 ..
독일에 와서 변한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사는 대신 기존의 것을 수리해서 쓰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좀처럼 새로운 것을 사거나 하지 않고, 직접 수리하거나 공들여 관리하면서 오랫동안 기존의 것을 지니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덕분에 나도 컴퓨터 하판에서부터 시계 끈, 필통, 헤드폰의 솜에 이르기까지 고쳐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는데, 이게 기분이 참 좋다. 한국에서 핸드폰을 2년 주기로 교체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소비, 소비, 소비로 가득채운 삶이었다. 사실 그러한 삶에는 기존의 것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는 것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만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 중의 하나가 삶에 연속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게 희한하게도 다시 스스..
바이마르에 어제 다녀왔다. Haltestelle에서 목사님께 최근 일주일간 밤에 대여섯 번은 자다 깬다고 말했다. 목사님은 내가 어딘가에 매여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 자유한 사람은 문제가 해결될 때 자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현실성을 누리는 사람, 더 능동적으로는 자유의 현실성을 부리는 사람이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잠이 다시 잘 오고, 자유하다고 생각하면 그 문제는 언제나 나를 이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 이전에 이미 내가 그것을 넘어서고 있음을 누려야 한다. 현실도피로서가 아니라, 현실을 창출해내는 삶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다시 예나에 돌아왔는데, 일찍 잠에 들었다. 이른 새벽에 한번 깬 것 말고는, 아침까지 오랫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다시금 깨달은 것이, 매인 사람 옆..
오늘은 프랑스 빵집에서 카푸치노와 크로와상을 아침으로 삼았다. 옆의 여성 두 분이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주저하고 있길래 내 의자를 내어주고 나는 더 구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sehr nett” (참 친절하시군요!)아직 열기가 뜨겁게 남아있는 커피 잔을 감싸며 생각해본다. 호의적인 것은 일종의 온도가 있으며 냉담한 것도 그러하다. 랭보는 지옥은 확실히 아래에 있다고 했는데, 그 지옥은 분명히 외롭고 스산할 것이다. 함께 함의 온도와 동떨어짐의 온도차는 확연하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전적으로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칠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조용하게 골목 길이나, 정원 속을 거닐기를 원할 것이다. 카푸치노로 따뜻해진 손과 배..
요즘은 꽉 찬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보통 6시나 6시 30분 정도에 일어나서, 빵과 커피를 먹고 독일 초등학생들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해서 라틴어 수업이나 독일어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와서 칼 바르트를 읽거나, 라틴어 공부를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든지 논문을 준비하든지 하는 일과가 반복되고 있다. 반복되는 일과는 거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어떤 일을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게 된다는 것. 그 동일성의 지속이 삶의 리듬이 되어간다는 것은 경외감과 감사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시편의 Hörbuch를 듣거나, Lutherbibel을 읽거나, 재즈를 듣는다던지 하는 시간은..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듯이 산도 빨갛게 익는다. 성숙Reifen이라고 하는, 무르익음을 위해서는 시간이 소요된다. 봄에, 여름에 보았던 집 앞의 사과나무의 열매들이 가을이 되어서야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본다. 참 느리다. 그 과정을 계속 지켜본 나로서는 참 느리다, 답답하다, 도대체 언제?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에 온지도 꽉 찬 8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교회교의학의 시간론을 반절을 읽은 것과, 오블라우의 책을 반절을 읽은 것, 박사논문의 윤곽을 반절 정도 잡은 것, 어학원을 반절 정도 마친 것 등이 있고, 기도가 무르익기 시작한 것, 책들을 읽어가는 것, 자전거를 두 손을 놓고 타기 시작한 것, 커피를 마시는 무수한 날들과, 여행을 하며 겨울의 암스테르담의 보도블럭과..
요즘은 6시 30분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루터비벨로 성경을 두 장 정도 읽고 나서, 뮈슬리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상을 시작하곤 한다. 여력이 되면 티비에 연결된 크롬캐스트를 통해 jtbc 뉴스룸을 보기도 한다. 체력은 먹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통해 유지된다. 가능하면 더욱 자주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집에서 나와 시내 도서관에 도착하기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니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능한한 학생식당에서 샐러드와 육류 등으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길일 듯 하다. 아침에는 바르트의 KD III/2를 읽고, 오후에는 Oblau의 책을 읽는다. 중간에는 점심식사를 포함해 최소 1시간 3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머그잔에 커피를 받아 도서관 앞 뜰 나무 아래서 멍하..
유소년기에 읽었던 드래곤볼을 다시 읽고 있다. 이번에는 공부도 할 겸 독일어 판으로 읽고 있는데, 1권부터 도리야마 아키라의 단순성에 대해 감탄하며 그의 화풍을 즐기는 중이다. 어린 시절에는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듯이 컷과 컷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었는데, 지금은 독일어 해석 겸 그림체 감상 겸 천천히 만끽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어떤 사람은 드라마를 볼 때 그 방대한 스토리를 빨리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키보드의 화살표를 주구장창 누른다는데, 어쩌면 나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지도 모르겠다. 결과라고 하는 것은 과정의 성취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 역시 경험으로서의 과정이 아니던가. 결과, 성취라고 하는 그다지도 짧은 지속을 위해 긴 과정의 지속을 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결국..
독일에 오기 전에 5년이 넘게 살았던 아파트 집의 짐정리를 아내와 함께 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틀만에 그 작업을 완료했는데, 우리가 했던 주된 일은 물건을 버리는 일이었다.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말하듯이, 짐을 버리고 나니 참으로 홀가분하고 정돈된 마음이 되었다는 것과, 그렇게나 많은 물건들을 5년동안 쓰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도 깨닫게 되었다. 독일에 가져올 수 있는 짐이 너무도 한정적이라, 우리는 각각의 캐리어 하나와 이민가방 하나씩의 분량만큼만 짐을 챙겨갈 수 있었다. 덕분에 몇 주에 걸쳐서, 그리고 이틀동안 집중적으로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을 버리거나, 남에게 주어야 했다. 더욱 아이러니했던 것은, 그렇게 짐을 줄였는데도 그 짐을 가지고 베를린 공항을 나서면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