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랑쥬 껍질 씹기 (170)
저녁의 꼴라쥬
아른헴 숙소의 집주인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눈에서 지성이 비추이는 것을 느꼈다. 네덜란드인들에게서 내가 자주 보는 눈빛이다. 어딘지 모르게 고독하고, 동시에 단호한 듯한 표정. 부드러움 대신 단단함을 선호하는 야성이 그 눈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느끼기에, 네덜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감각을 치열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화를 이루고야 마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는 기후문제를 에너지전환에서 해결을 찾고자 하는 연구자이며 작가였다. 우리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아른헴과 네이메헌의 역사, 그리고 Lely가 바다 위에 구현한 엄청난 간척지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Lelystad에는 그의 동상이 아주, 아주높은 곳에 홀로 고독하게 세워져 있는데, 화가 프리드리히의 Der Wanderer를..
아른헴에 다녀왔다. 사실은 북쪽의 흐로닝언에 가보고 싶었다. 네덜란드에서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 여전히 있지만 나는 늘 noord 쪽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더 큰 공허와 결핍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내게 되물었다. 그래, 거기까지 멀리 혼자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네 눈에 좋은 것을 보고, 네가 가고 싶은 만큼 멀리 가서 네 갈망을 채워도, 거기에 가서 너는 어떤 의미를 얻고자 하는가? 그 결핍은 내 안에서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러다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문득,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것을 나누고자 하는 갈망. 힘에 부치도록 더 내어주고자 하는 갈망. 레비나스의 말처..
지금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꼭대기 층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밤공기를 쐬며 독일 회사에서 나온 요거트를 먹는 중이다. 이 도시는 내가 지도교수님과 콘탁을 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들어온 독일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니 ‘처음 들어온 곳으로 마지막 독일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나의 처음에 끝의 씨앗이 이미 있었던 것일까. 그때 나는 몰트만 교수를 튀빙엔에서 만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예나로 떠났었는데, 이제는 유학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 사람의 앞길은 도무지 알 수가 없기에, 시작에 그 끝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말은, 미래로 나아가고, 과거를 회상하는,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지는 가운데에만 존재하는 인간의 시간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한계 관념으로서의 신적인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
6월에 워크샵 참석차 파리에 다녀왔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신학부 근처인 5구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 파란 대문을 들어가면 건물들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안뜰이 있고 울퉁불퉁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파리의 가정집이었다. 도착한 월요일 우리는 근처 카르푸에서 생수와 빵, 잼 등을 사고 동네를 산책했다. 집 앞 거리에는 분수가 있었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쉬고 있었다. 적당히 활기찬 길거리와 적당히 한적한 동네 골목을 모두 가지고 있는 좋은 거주지역이었다. 화요일부터 나는 워크샵을 시작했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파리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이었다. 수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발표를 하고 아내를 만나러 오페라 지구로 간 그날, 집주인에게서 집 근처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고 문자가 왔다...
대학생 시절에 나는 일본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유순하기 한이 없으신 간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형제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 자유함은 엄격한 규율보다는 사랑 가운데에서 더 빛을 발할 것입니다. 저는 형제님에게 호놀룰루 같은 도시에서 훈련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내가 그 도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수많은 파도들이 부딪히며 포말을 이루는 해변의 이미지 뿐이었다. 사실 그 이미지는 로렌 커닝햄의 의 책 표지의 이미지였다. 사람의 인생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려 가기도 한다. 나는 신혼여행으로 교토에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도호쿠 대지진 사건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때 나는 포천의 작은 다리 위에 있..
어떤 것이 망가지는 경험을 하면, 내 안에 원래부터 자리하던 비존재에 대한 감각이 뚜렷해진다. 며칠 영문을 모르고 계속 잠을 잤다. 잠시 아파 누워 있는데도, 바깥을 아예 나가지 못하고 몇달간 격리되어 있던 코로나 시절의 기억의 상흔들이 전부 되살아나며 나를 그레고르 잠자와 같이 사회로부터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내내 구름이 가득했다. 아침에 학생식당에서 소세지와 샐러드를 먹고, 신학부 도서관에 짐을 넣고 산책 겸 언덕을 올랐다. 험한 경사로를 오르며 지인과 헐떡이는데 험한 인생길을 함께 걷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망가지는 경험은 대체로 무언가를 상실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아픈 와중에도 시험을 앞두고 두 주나 결석하게 된 프랑스어를 걱정했다. 생각치 않게 빠져나가는 병원비와,..
흔적들이 겹쳐지면 의미를 형상화한다. 나는 튀빙엔 대학 도서관에 앉아 있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12시 30분이 되어서야 기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네카 강 옆의 중국 식당에서 회과육을 먹고, 골목들을 걷고, 또 걸었다. 골목의 어느 순간 순간 7년 전 기억의 부분들이 재생이 되었다. 이곳을 겨울에 오는 것은 처음이다. 관광객도 없고, 햇살도 없고, 상점들도 문이 닫힌 몇천년의 고도를 걸으며 역사성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몇천년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은 겹치고 겹치며 역사성 자체를 형상화한다. 단순히 어떤 가게와 집들과 거리로 이루어진 공간을 넘어 수많은 시간을 지나며 형성되는 긴 지속duree longue의 멘탈리티 같은 것까지 느껴지는 겨울의 아침이었다. 천년고도를 방문하면 역사적 의식의 ..
논문을 쓰다가 페이지 수가 너무 안나와서 고민을 지인에게 나누니 박사논문 구격에서의 줄 간격이 1.5라는 말을 들었다. 줄 간격을 변경했더니 놀랍게도 페이지 수가 1.5배 늘어버려서 강제로 논문의 막바지에 이르러 버렸다. 며칠 전 꿈에서 선배가 나에게 앞으로 17페이지. 라고 말했을 때 남은 페이지 수가 71페이지나 되었었는데, 줄 간격을 바꾸고 나니 정말로 200페이지에서 17페이지 부족한 상태가 되었다. 나의 석사 논문 주제는 시간성이었다. 이 주제 설정의 이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때문이었다. 사람은 왜 있다가 사라지는가. 그리고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사 논문 주제 역시 시간성이지만 나는 더 깊은 곳에 들어와 있고 논문을 시작하던 2017년, 아니 20..
드레스덴에 다녀오면서 매우 우연히 베르메르의 를 보게 되었다. 이 그림을 이전에 보았을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느껴졌다. 알고 보니 소녀 뒤에 있던 큐피트의 그림이 복원되었다고 한다. 큐피트의 그림이 복원되고 나니 그림의 해석이 달라졌다. 이전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매우 어두운 분위기에서 어떤 여인이 알 수 없는 편지를 읽는 주제라고 파악했었는데, 큐피트의 부활로 말미암아 소녀가 읽는 편지는 사랑의 편지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큐피트의 액자의 부활로 그림의 전체 구도 또한 안정화를 이루었다. 베르메르는 그림 속에 주제를 암시하는 장치들을 배치해서 구도와 서사 모두를 추구하는 화가이다. 역사적 복원 작업이 의미의 재형상화를 이루었다.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만이 아니며, 내 앞에 놓여진 것의..
나는 같은 스니커즈를 산다. 십여년 전 스헤브닝언에서 찍은 사진 속에도 동일한 스니커즈가 피사체로 담겨져 있다. 매번 같은 운동화를 산다고 해도 그것이 새 운동화라는 점에서 나는 매번 다른 운동화를 사는 것이다. 나는 오늘을 살지만 같은 오늘을 살지 않고 새로운 현재라는 점에서 매번 다른 오늘을 살고, 그 다른 오늘들이 나의 인생을 구성할 것이다. 새로움과 반복이 서로 얽혀서 삶의 리듬을 구성한다. 다름 가운데에서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무언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동일하다는 신실함이다. 아무리 힘겨워도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것만은 멈추지 말라고, 아버지가 생전에 말씀하셨다.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그냥 흐르는 시간은 내 뒤로 지나가 산란되어질 뿐이다. 시간을 구성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