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사랑 (23)
저녁의 꼴라쥬
오늘의 나는 누구입니까? 어제 나는 당신과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단단하게 무장된 마음으로 당신 앞에 나아갈 때, 왜 당신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울음을 꺼내놓는 것입니깍? 내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울음이 있길래, 나조차도 마개로 봉해놓은 그 깊고 깊은 굴의 여로를, 당신은 왜 오늘도 여전히 탐색하길 원하십니까? 내 안에 한번에 들어오셔서 헤집지도 않으시고, 나의 굴 밖에서 그다지도 다소곳하게, 묵묵히 서계신 것입니까? 주여, 그 주님 앞에서 오늘도 나는 나의 무장된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당신 앞에는 내 맨 얼굴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당신은 말의 힘이 억센 것이나, 용사의 창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은 눈물과 콧물로 바닥을 투명하게 칠하는 나의 투명한 영혼..
이전에는 모임 속에서 늘 무언가 웃겨야 한다는 강박 아닌 충동이 있었나보다. 십년도 더 전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지인이 나에게 '웃긴 이야기를 꼭 하려 할 필요 없다'라고 조언해주었다. 재밌는 것은 더이상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못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모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모임은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지속되었었는데, 당시의 나에게는 그 한달이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인이 참 고맙다. 있는 모습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내가 유머와 거룩함의 균형을 깨닫게 되었을까? 나에게는 그 한달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기간은 나에게 필요한 기간이었다. 그 이후로, 언제 입을 열어야 하고, 언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생긴듯 하다. 반대로, 어떤 ..
벌써 봄이다. 강아지처럼, 또는 두렴없는 어린이처럼 봄은 나에게 성큼, 다가와 품에 안긴다. 봄에 대한 기다림은 참 길었는데, 봄이 성큼, 다가오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벙벙하기도 하다. 도서관 홀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아 시간이 정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삶의 습관으로 견실히 자리잡힌 것이리라. 바이마르에 이사오고 난 후에 같은 도서관, 같은 산책, 같은 연구의 리듬이 반복될수록 단정한 만족감을 느낀다.도서관에는 내가 사랑하는 드가의 화집에서부터 존경해 마지않는 후설의 저작까지 적당히 빼곡하게 꽂혀 있다. 홀에 앉으면 나의 배후를 제외한 ..
오늘은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다가 Mensa am Park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지긋이 혼자 거니는데 해가 구름에서 나올때 나도 모르게 '아아'하며 무심코 소리가 나온다. 나무에서 움이 트고 순이 나는 것을 보았고, 공원 길을 따라서 산책하듯 멘자로 향했다. 파스타를 시키고, 샐러드로 올리브, 파프리카, 토마토, 피넛, 참치등을 담아왔는데 3유로가 조금 넘는 가격이 나왔다. 담백한 기분이 들었달까, 무튼 차분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공원 길을 따라 내려와 흐르는 강을 멍하니 바라보고 지근거리에 있는 도서관의 카페테리아에 고양이처럼 숨어들어가 온화한 할머니에게 커피 한 잔을 받아 홀짝거리며 창 밖을 보니 햇살 아래서 연인이 포옹을 하고 있다. 잘 조성된 공원 안을 거닐때면 나는 최초의 행복감을 느꼈던 ..
지인과 카페에서 이야기하다가 무심코 책상을 스윽 쓰다듬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커피 잔을 감싸쥐는 습관은 언제부터였을까? 잔 자체의 온도가 아니라, 뜨거운 무엇을 쥐고 있다는 데서 나는 묘한 위안을 얻는다. 나의 유년기는 서러운 겨울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차디찬 방바닥 위의 얼어붙은 개구리처럼 꼼짝을 못하고 수일을 버티다가, 횡단보도 건너 주유소에 기름통을 들고 가서 반정도 담아오면 그것으로 며칠을 버티곤 했다. 하도 기름을 오랫동안 넣지 않아 보일러가 망가진 날에도 내 기억에 아버지는 낙천적이셨다. 어두운 날에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훗날 군에서 죽음 한발짝 옆에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서러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면, 이상하게 저편에서 꼭 설레임의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곤 했다..
기도를 하다 문득 하나님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왕의 자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바다 속에 있는 것이나 하나님은 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자유와 권세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보라. 그는 모든 것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철저히 그 권세와 자유를 남을 섬기는 데에 사용했다. 권세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권세 때문에,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자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아들과 청지기는 하나이다.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다. 이 정직함을 회복하는 순간 사람에게는 느부갓네살이 총명을 다시 회복하듯 하나님의 영이 다시 부..
프랑스어가 중급 정도 되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제랄드 메이가 사람들이 사랑을 피하고 효율성을 택하는 이유를 사랑이 수반하는 vulnerability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본다. 내가 벌거벗겨지고, 연약함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랑. 사랑은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해 십자가 위에서 뜨겁게 수치스러워지셨다. 한 교인이 일전에 나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초라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이 맥락이 아버지를 빗대어 말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말을 아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니오, 저는 초라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초라한..
아버지의 외로운 다음카페에 들어가보았다. 조회수도 몇 없고 댓글도 없는 글들이 가득하다. 던 그 글 앞에서 유난히 눈물이 흘렀다.아버지를 찾아뵐 때 언덕진 근처 공원으로 휠체어를 밀어올려 드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아파트 단지 앞 트럭에서 과일장수가 팔던 사과 세 덩이 아버지 무릎 위에 놓고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 한덩이씩 비둘기와 같이 먹고, 아버지와 한참을 수다를 떨곤 했다. 아버지의 외로운 카페에 들어가 외로웠을 아버지 생각하니 더더욱 사무친다. 불꺼진 한밤 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 로비의 컴퓨터에서 몇 자 끄적였을 아버지. 어두운 밤 소스라치게 깨어나 하나님 살려달라고 작고 약하게 기도했을 아버지.아버지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마를 만지고 얼굴을 보았다. 의식..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다. 진리의 영은 자유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 가운데서 신비롭게도, "자발적으로" 우리는 희생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누구도 십자가를 강압적으로 메고 갈 수 없다. 반대로 어느 그리스도인도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다. 가장 불쌍한 것은 이 가운데 끼어 탄식하는 이들이다. 누구도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못한다. 사람이야말로 이 자발성을 질식시키는 데에 선수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에게는 한병철의 표현대로 '머뭇거림'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머뭇거림의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허락하신 위대한 기다림의 시간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시간이다. 너는 참으로 결정하기 위해서 머뭇거린다. 네 안에서 진실된 것이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그..
예수께서 실패한 베드로에게, 번아웃된 베드로에게 회복시키신 것은 사랑이었다. 그는 아마도 충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랑을 먼저 회복시키신다. 베드로의 연약과 상관없이 (더 강함이 더 사랑함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베드로의 마음 가운데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예수님은 일깨우셨다. 그 사랑은 베드로의 안에 있었다. 충성의 실패와 함께 그 사랑은 어두컴컴한 동굴 가운데로 숨어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과 자격을 동일한 위치에 놓으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주님께서는 먼저 자격없는 자를 그 위치에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포옹해오신다. 그리고 그에게 애초에 힘이 없었음을 주지시킨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이 없음으로, 능력이 없음으로, 의지가 약함으로 우리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