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은혜 (6)
저녁의 꼴라쥬
"사람은 시인으로 이 땅에 산다" (dichterisch wohnt der Mensch). 시를 짓는 것이 단순히 헤매는 것이 아니고 건설을 통해 방황을 끝내는 것인 한, 시는 사람이 이 땅에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려면 언어와 나의 관계가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말한다. 그때 사람은 언어가 자기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언어에게 답한다. 그래서 훨덜린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시인으로 이 땅에 산다." 하늘과 신을 향한 마음과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실존 사이에 긴장이 유지될 때, 사람은 비로소 산다는 것이다. 시는 시를 짓는 재주 이상이다. 포이에시스(poiesis), 곧 창조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창조이다. 그런 뜻에서 시는 본래의 삶이다. 사람은 시인일 때만 산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길을 걷다 풋, 웃음이 나온다. 하나님은 참으로 유머러스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숨바꼭질을 즐겨 하신다. 그분 자신이 숨는 것도 즐겨 하시고, 우리가 숨어 있는 것을 찾아 내는 것도 즐겨 하신다. 그는 우리의 삶에 참으로 많은, 다양한 선물들을 주셨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는데도, 두려움과 염려, 방어기제가 그러한 것들을 '받지 않는 안정권'으로 우리를 숨긴다. 나는 그러한 순간들마다 내 영혼에 어스름이 지는 것을 느낀다. 점점 '받지 않고' '주지도 않는' 안정권에 나를 밀어넣을 수록, 내 지각은 매우 협소해진다. 때로는 중간에 낄 때도 있는데, 이야말로 인간이 생각하는 연약한 갈대라는 우스꽝스러운 진리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우리는 받는 것도 아니고, 안 받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 지대에..
온 바다를 말려 소금을 만들듯 나도 자유를 내놓아 작은 결정結晶이 되고 싶다 오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청순한 소금이 되어 모든 썩음의 품 속에 들어가 대신 썩어 생기를 주고 모든 밍숭맹숭함 속에 들어가 대신 죽어 맛을 주는 그런 작은 결정決定이 되고 싶다 눈물을 말리면 소금이 된다 소금이 녹으면 눈물이 된다
자유와 원칙의 변증법은 계속해서 순환할 것이다. 지구 저편에서는 계속해서 자유의 소리가 외쳐질 것이고, 해방에 대한 기쁨으로, 참된 (나는 이것은 예술가적인 자유라고 말하는 것 이외의 가장 좋은 표현을 찾지 못했다) 자유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여전히 그 자유로 생겨난 부스럼들과 허물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자유에 대해서는 원칙이 따라가야 한다. 방향타가 없는 자유는 없다. 올바른 방향타가 있는 자유는 놀랍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참되고 완벽한, 창조적인 자유이다. 우리는 이 자유를 누리되,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누려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성령을 통해 열매맺고 있음을 확신하자. 억누르..
내가 죽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 내가 죽으려 할 때, 그것은 대속의 십자가를 제껴두고, 내 십자가를 세우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해서는 자아가 절대 죽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약하심이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다. 내 죄를 위한 하나님의 적응accommodation이다. 이 적응은, 나를 위해 어리석어 지셨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약해지셨다는 것이다. 나의 죄를 보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사랑은, 죄를 넘어 그 사람을 본다. 약해지지 않으면 저편으로 넘어갈 수 없다. 어리석어 지지 않으면 저편으로 갈 수 없다. 사랑은 나의 고귀한 신분을 버리고 겸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는 것이며, 나를 죽이고 너를 살리는 것이다. 도덕적인 노력과 의지 이전에, 이 사..
게다가, 하나님을 온전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일들로부터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우선 다른 유혹들을 맛보고 그것들을 우리 신으로 삼지 않으려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자유에서 태어날 뿐만 아니라, 힘든 선택 가운데서 태어난다. 성숙하고 의미있는 사랑은 이렇게 고백해야만 한다. "나는 다른 좋은 것들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죠. 하지만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 내가 모든 것 중에 선택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위엄있게 집으로 돌아오려면 먼저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제랄드 메이, 중독과 은혜,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