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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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4월 17일 수기, 횡설수설

jo_nghyuk 2019. 4. 17. 18:37

어제 오늘 예나에 와있다. 예상한 만큼의 연구는 하지 못하고 대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 위주로 보냈다. 오랫만에 보면 사람들은 반가워서 놓아줄 줄을 모른다. 나도 그 마음의 소중함들을 알기 때문에 새침하게 나의 일로 쉽사리 복귀하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아마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유폐되어질 예정이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렇게 괄호 안에 진심인것 처럼 적어놓아도, 당장 내일 점심에도 교제가 있고, 내일 모레 점심에도 그러하고, 글피에도 그러하다. 아아, 늘 그러하다.

뭐, 나쁘지 않다. 아직 나쁘지 않다pas mal는 감각이 있는 것도 은총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바쁜 것에서 은총을 누리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그러함에서 은총을 누린다. 서로 섞이지 않으면 그걸로 좋다. 나는 본성적으로 느림의 내재율이 있어서, 채근당하면 머리가 굳어버린다. 정말이지 머리가 나빠지는 경험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느림이 리듬감을 잃을 정도로 산란zersplittert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에게 정직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정직해지고 대신 경직되지 않았으면 한다. 작은 일들에 경직될만한 나이도 아니고. 

나의 지도교수는 메신저나 메일같은 것들로부터 아예 자신을 소격화시키는 시간을 빈번히 가진다. 바빠서? 아니다. 나는 그가 SNS를 줄기차게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을 흔드는 것들로부터 단호한 바보가 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말했다. '단순하게 하라, 단순하게 하라' 자신의 삶을 간소화minimalisieren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은 방청소를 하지 않고 지내는 것과 같이 내게는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분명히 나의 간소화된 삶에 대해, 나의 느긋한 템포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내버리면서까지 사람의 마음에 들고 싶지 않다. 그렇게 바쁘게 찢겨지면서 사는 시간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현재를 사는 사람은 시간의 향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이 글을 쓰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처럼, 자신의 본연을 풀어줄줄 아는 사람은 현재를 선물로 받는다. 그는 과거화되는 현재가 아니라, 늘 새롭게 미래로부터 돌입하는 현재를 받는다. 기대expectation은 집착과 중독을 낳고, 희망hope은 판타지의 미래지향 속에서 늘 꺼지지 않는 불처럼 사랑하고 갈망하게 한다고 메이Gerald May는 말한바 있다. 

미니멀리즘은 버리기 위함이 아니다. 버리는 것은 헤겔적인 변증법의 안티테제같은 것이다. 버리는 것은 참된 것을 취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보통 버리지 못하면서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혹은 버린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애착의 끊어짐에 대해서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의 변증법의 시간계열을 정직하게 경험한 사람은 말한다. 버리는 것이 취하는 것이라고. 미니멀리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만 삶의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신념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며 삶을 사는 방식이랄까, 존재양태랄까. 실은 참으로 단순하고 순전한 것이다. 순전하지만 순진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어리석지 않다. 

아침에 예나에 와서 프랑스어 교재를 샀다. 시디를 노트북에 넣고 아이튠즈로 변환해서 아이클라우드 서버에 (이미!) 올라간 것을 아이폰을 거쳐서 내 헤드폰으로 듣는다. (대체 너는 어디까지 갔다가 내 귀로 온거니) 옛날이었으면 시디 파일을 mp3로 변환하고, 아이튠즈를 연결하고, 아이폰에 넣고, 이어폰을 꽂고 별 쇼를 하며 시간을 날렸을텐데, 이제는 지가 알아서 다한다. 나는 그 노동으로 쏟아야했을 시간에 브래드 멜다우의 신보를 듣거나, 이미 올라간 음원들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 새벽기도 때문에 오늘도 일찍이 예나로 왔더니 체력적인 부하가 있어서 일부러 오전시간을 오프off시켜놓고 쉬는 중이다. 아내의 여전도회가 끝나면 근처 식당에 가거나 카페에 갔다가 다소곳하게 바이마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조용히 읽던 책을 계속 읽겠지. 

나처럼 숲이나 도서관에 유폐되어지길 좋아하는 사람도,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즉흥연주improvisation만큼이나 나 자신을 놓아버린다. 그리고 허허허허, 푼수같이 웃는다. 이상한 표정도 짓고, 멍청한 동작도 하고 (이를테면 사카이마사토가 짓는 표정따위) 구박도 받고 핀잔도 주고 위로도 하고 격려도 받고 도전도 주고 영감도 받고 하면서 사람들을 '그냥' 만나는 것이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그냥 좋은 것처럼, 나는 사람들을 만나 잼 세션을 하는게 그냥 좋다. 마치 차분한 피아니스트가 잼에 들어가서 부드럽게 혹은 치열하게 타오르고 작열하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연주실로 돌아와 다시 조용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삶이란 혼자가 되기도 하고 성군constellation이 되기도 하는, 뭐 그런 것이다. 

죽어도 이태리어는 안 배우려고 그랬다. 그냥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여름에 이탈리아 위주로 가고 싶다고 하신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이탈리아 여행 책자를 보며 한두달 정도는 이 취미를 가져야겠구나, 생각한다. a2에 진입하면서 프랑스어 독학이 멈춰버렸었는데, 사실 모든 언어는 a2 진입할때까지는 아무런 부담과 스트레스없이 배울수 있으므로, 취향이 아닌 언어도 배워보려 한다. groß Latinum을 딴 이후로도 가장 근접한 언어인 이태리어는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바보같이) 꽂힐 때만 한다. 꽂혀야 하고, 하고 싶어야 하고, 움직여져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도전하고 채근할 때도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 편이다.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면, 나라는 영혼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성군에 들어있는 나는, 아내와 어머니가 연관된 일에는 움직여져야(만) 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좀 움직여진다, 하하하. 좀 더 가족을 사랑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불과 어제 한 커플에게 아니 그 커플의 남성에게 모든 것을 여자의 뜻에 맞추어서 하라고 주문한 멍청한 리더이다. 아내가 말한다, 너나 잘해라. 나한테부터 잘해라. 아멘.

교재에 라벤더 들판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아아 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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