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6월 21일 저녁기도회 복기, deus absconditus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6월 21일 저녁기도회 복기, deus absconditus

jo_nghyuk 2019. 6. 22. 03:03

모범생이 실족하면 금식 외에는 답이 없다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창공을 활강하던 알바트로스가 추락하면 그 큰 날개는 걷기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 

그렇게 뒤뚱뒤뚱 거리며 땅 위를 걷는 것은 알바트로스에게는 비참이다. 왜냐하면 그의 지어짐은 땅 위를 걷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 위를 훨훨 나는 것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땅 위를 걷고자 하면 오히려 육중한 날개는 장애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기도를 하는 자는 기도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냐. 그 요청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러하다. 다른 여러가지 길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내 길이 아니면 나에게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은 갑판 위를 뒤뚱거리며 걷는 알바트로스를 비웃는다고 보들레르는 노래했다. 내 길이 아닌 길을 걸으려 하면 열매도 없고 비웃음까지 사게 된다. 내 날개는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큰 것이냐 신세한탄을 시작한다. 

각자의 장점으로 일해야 한다. 각자의 색깔로 부르심 받아야 한다. 부르심의 음성은 한 분이지만, 각자의 길은 너무도 고유하다. 때로 나는 중매쟁이 같아서 알바트로스와 하늘을 연결시켜줄 때가 있다. 너의 길은 땅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를 나는 것이다. 너는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니라 기도하고 기다려야 할 때이다.

추락한 알바트로스는 자책을 시작한다. 하늘을 날던 경험의 기억 때문에 땅 위의 삶은 더욱 더 핍절하게 하는 무간지옥과 같이 느껴진다. 

물론 너는 너의 힘으로 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할 수는 없다.

저는 저의 허물과 불신앙과 죄악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약하고 더러운 나라도 좋다면, 나를 써 주십시오. 더럽고 연약한 나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세련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오만을 벗는 것이 추락한 알바트로스의 최대 난제이며 과제이다. 그는 하늘에서는 우아한 왕자였지만 거대한 거위마냥 뒤뚱거리며 걸어야 하는 지금을 또한 견뎌내야 하리라. 신앙은 세련함이 아니라 투박한 열정이며, 지껄이는 소란이자,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향한 몸부림이다. 이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키에르케고르적인 도약의 열정이다. 이것까지 우리에게서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 

멋지게 여러 걸음을 내달릴 것만 생각하는 알바트로스에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피를 흘리며 말한다.

바보야, 한 걸음이라도 지금 내딛어라. 멋있는 거 말고 연약한 것이 주가 일하시는 통로다. 

알바트로스는 울부짖는다. 목은 부었고, 어깨는 결리며, 귀까지 염증이 파고들지만, 그는 하늘까지 울부짖는다. 그리고 멋있어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좋지않은 모양새에도, 불완전하며 불만족스러운 우스꽝스러움에도 뒤뚱거리며 다시 날개를 퍼덕인다. 

한 걸음이라도 아무쪼록 더 내딛으려 하는 것.

자기보존의 본능은 그만 가고자 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를 돌보지 않고 자기 밖으로 나가려 한다. 몇 걸음도 아니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 한다. 사랑은 자기의 내면을 향하지 않고 바깥을 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 앞에서 숨어버리셨다.

그녀는 모든 실패와 실망의 파편이 튀는 것을 감수하며, 산산조각이 나면서, 뼈가 으스러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자존심이 곤두박칠치고 생각했던 계획이 다 뒤틀릴 때, 피가 흥건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간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나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나는 거대한 오리입니다. 그러나 오리도 날 줄은 압니다. 저로 하여금 다시 날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을 쓰소서. 더러운 나라도 받으소서. 저는 허물이 많고 그런 나를 쓰소서.

이러한 신앙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알바트로스같이 큰 날개를 가진 녀석이 소심해서는 곤란하지. 

100번 추락하면 100번 다시 날자.

10,000번 추락하면 10,000번 다시 날자.

날기 힘들면, 걷기라도 하자. 날개가 나을 때까지. 남들이 그 뒤뚱거림을 비웃어도, 욥처럼 기왓장으로 종기를 긁으며 하나님 앞으로 따지며 나아가자. 그리고 한 대 얻어맞을 때까지 나아가서 폭풍우 속에서 그를 만나 벌벌 떨며 주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몇 대 얻어맞고 관계를 회복하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