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9/05 (14)
저녁의 꼴라쥬
이 맥북을 중고로 산지 6개월도 되지 않았다. 이베이 중고 벼룩시장을 통해서 450유로를 주고 샀는데 이제는 켜기만 해도 냉각팬이 시끄럽게 돈다. 2011년형이라 연식이 오래 된 감도 있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CPU에 부하가 걸리는 작업을 너무 많이 했다 싶다. 모든 하드웨어는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지금 내 컴퓨터는 매우 쇠약한 상태인듯 하다. 이번에 교토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니 여행이라기보다 정주함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몸이 다시 많이 좋아짐을 느낀다. 한국에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모두가 호흡이 매우 짧고 불규칙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을 살면서도 동시에 다음 시간에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내일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며칠 뒤의 처리할 일들까지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뜨겁게 ..
이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열흘이 빠르게 지나갔다. 교토에서 지나치게 행복해서 수기를 작성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을 하고 편의점에서 산 계란 샌드위치와 커피등을 마시고, 고운 린넨 셔츠와 바지를 챙겨입고 이치조지나 교토조형예술대학 근처 동네를 산보했다. 지인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더 조용해져버려서, 전차를 타고 북부의 깊은 산자락으로 들어가 온센을 하고, 히에이 산 정상에도 오르고, 교토 남동부 산의 겨드랑이까지 들어가 유도후를 후후 불며 먹었다. 셀프 유폐의 만끽. 숙소는 작은 교회였다. 2층에 20명 남짓을 수용하는 예배당이 있었고, 1층에 화장실과 거실 그리고 작은 방이 있는 전통 가옥이었다. 새벽이면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삐걱이는 마루에 엎드..
나는 신칸센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정갈한 주택과 말끔한 맨션들이 지나간다. 서울에서의 5박 6일은 불면 플러스 근면의 시간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일을 하고, 일어나면 일을 했다. 그 사이에 그래도 지인들을 꼬박꼬박 만나려고 했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카를 타고 교토로 가는 길을 나는 좋아한다. 간사이 해협 위를 달리고, 신오사카의 굵직굵직한 도심 건물들을 관통하여 달리다 보면, 가지런히 산의 능선이 물결치고 듬성듬성 검은 목조 가옥들이 등장한다. 서울의 나는 연장전이 끝날 때까지 싸우는 축구 선수와도 같았다면, 지금은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 마냥 칼피스와 화과자를 먹으며 교토를 향하고 있다. 하루 정도는 아무도 없는 산 속..
오늘도 중간에 깨서 글을 쓴다. 오늘은 매우 피곤해서 더 잘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0시 30분에 눈이 떠진다. 일어나 불을 키고 낮에 산 인절미를 주워먹는다. 오늘은 감사로 가득한 하루이다. 독일의 지도 교수님과 헝가리의 교수님 부부를 모시고 서울 투어를 하는데, 사랑하는 지인 두명이 차량운전과 역사 가이드로 도와주었다. 헝가리에서 오신 교수님은 매우 유쾌하고 유머러스했으며 소탈했다. 세종시장에 있는 투박한 국수를 먹는데, 자신은 이런 것이 좋다며 분위기를 즐겁게 띄웠다. 독일어도 잘 해서 영어로 대화했다가 독일어로 대화하기도 하면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경복궁에 가서 여행객으로 번잡한 입구를 지나 사람들이 거의 없는 가장 안쪽의 겨드랑이까지 깊숙하게 들어갔다. 오, 사람이 없으니 우리 모두는 ..
한국에 오면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들의 과잉을 경험한다. 교회 밑의 골목만 해도 일년만에 수십개의 점포가 바뀌었다. 모든 것을 한번만 하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습관은 인지적인 층위가 피상적임을 의미한다. 반복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더 다채로운 것들을 익숙함 속에서 발견하게 한다. 익숙함의 뼈대가 오히려 다채로운 색채를 안심하고 인지하게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너는 그것을 '더 알아간다' 나는 독일에서 잘 살고 있다. 쓰던 것을 계속 쓰고, 고장나면 고치고, 또 고장나면 또 고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흰 셔츠가 누래지면 흰 셔츠는 소모품이니 버리고 세일 기간에 두장을 사라고 조언하는 것을 듣는다. 소비의 홍수다. 독일은 분명 한국보다 선진국인데 문명의 선진화는 한국이 더 빠르다. 그러..
20시에 자도 24시에 눈이 떠진다. 시차 적응을 하는 몸은 솔직하다. 너무 개운해서 이번에는 아침까지 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몸은 13시에 낮잠을 잔 것으로 계산해서 15시에 나를 깨운 것이리라. 낮잠을 잤다고 생각하고 개운한가 보다. 그럼 또 04시가 되어야 잠이 오려나. 아무튼 나는 개운한 상태로 5월 13일 새벽에 12일의 수기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도 04시가 지나서야 잠이 들었고, 09시에 눈이 떠졌다. 씻고 오랫만에 모교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독일에서는 지갑 따위에 카드가 들어가 있으면 카드 리더기가 읽지를 못한다. 지갑 안에 있는 카드를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신세계다. 한국이 선진국이고 독일이 후진국인 것 같이 느껴진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지나치게 바..
그렇다. 지금 나는 장신대의 숙소 안에 있다. 오랜만이라 오히려 처음 입학하고 풋풋하던 새내기 전도사 시절이 생각이 났다. 새삼스레 나의 모교가 이다지도 좋았던가, 하며 감탄했고, 오랜만에 만난 한국 교수님도 너무 좋았고, 교정을 거닐고, 학교 앞 조용한 마을을 산보하는 것도 참 평안했다. 그냥 이 모든 것이 은혜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도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지도교수님과 나를 태워서 장신대까지 데려다주고, 한국의 교수님이 환대를 해주시고, 함께 한강을 거닐고, 간만에 커피점빵의 게이샤 커피를 아이스로 마시고, 교수님을 숙소로 모시고 다시 나와 한국에서 사역하던 교회의 청년들을 만나 늦게까지 하나님 얘기를..
독일에서의 to-do가 다 끝났다. 수요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영적으로 매우 상쾌한 동시에, 육체의 기어를 조금씩 내려서 휴식해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집에 와서 조용히 고기를 구워먹고, 토트넘과 아약스의 경기를 보다가 아약스가 두 골을 전반에 넣는 것을 보고 노트북을 닫고 외국인청에 낼 서류를 아내와 함께 작성한다. 서류가 다 구비된 것을 확인하고, DAZN에 들어가 보았더니, 아 글쎄 brésilien 루카스 모우라가 두 골을 넣어놓은 것이 아닌가. 경기는 20분이 채 남지 않았고, 육신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 90분의 시간이 끝나고 주심은 5분의 연장시간을 주었다. 5분이 다 끝나고, 5분 1초가 될 때, 루카스의 발 끝에서 골이 하나 더 터졌다. 루카스는 기독교인 같은데 연신 ..
독일은 봄 중간에 겨울이 껴있기라도 한 것인가. 아침에 눈발이 거세다. 봄에 진입한지 한참 지났는데도 눈이라니? 이제 다시 해가 뜬다. 나는 아침에 일찍 번역 업무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서울에 가서 할 오후 집회 설교 작성과 수요 예배 준비와 목요일의 비자 갱신을 위한 서류들을 차분하게 하는 것이고, 서울과 교토의 지인들에게 줄 작은 것들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 외에는 하지 말자, my priority. 신문을 보니 40대가 되면 한주 25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나는 아직 3년 남았는데도 지극한 공감이 간다. 20대의 치열함은 이제 먼 이야기인가. 성경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이 부드럽게 타이르신다, 청년들 너무 잡지 마세요. 최근에 목이..
두 가지 방향의 진리의 사고를 교차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 1. 영적인 분별력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2. 동시에 영적인 분별력을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벧전 5:5).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이미 선택을 받았으며 늘 은혜 안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깨어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세'였다. 이미 구원을 손에 넣었다고 자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실제 실력이 다른 것이다. 마태복음 13:11-15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늘 그가 주의 말씀으로 인해서 '갈등'을 겪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