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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휘브리스로 가득한 글쓰기를 뉘우치고자 40일간은 이 공간에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매끈한 글 뒤에 교만함이 숨어 있다. 그 공교한 메커니즘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글은 그대로 남겨 둔다. 스스로에게 잘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그 옷의 이름은 포괄성이다. 나는 북쪽으로 향하는 지향성이 강한 사람이다. 암스테르담에 머물 때도 Noord로 가능한 한 페달을 밟으며 올라가고자 했다. 기차를 탈 수 있다면 꼭 북해를 보러 나아갔고, 프랑스에서도 노르망디에 다다르는 것이 그저 좋았다. 사실 북해 자체는 그다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일상의 기후는 흐리며, 자갈에 차가운 물들이 부딪히는 곳이다. 나는 흐릿하고 복잡한 것이 분명한 패턴을 이루는 순간에 늘 매혹되어 버린다. 내가 북유럽을 가본 적도 없..
몸에서 열이 난다. 춤과 기도가 밥인 지인이 독일까지 오기로 했다, 기도하기 위해서. 그날 꿈에 나는 큰 덤프트럭이 굴러오는 것을 보았다. 몸에서 열이 나지만 열을 뚫고 기도해야 한다. 스스로가 허브hub가 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기둥처럼 견고해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도를 하면서 스스로가 부드러운 이끼 낀 바위 같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그래, 그러나 그 씨앗이 제 힘으로 들치기 위해선 들판이 또한 역장Kraftfeld이 되어 주어야 할 테지. 독일의 땅은 토질이 매우 좋아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물을 머금는다고 한다. 그러한 땅에서는 좋은 것들이 많이 난다..
기도를 하는데 선천적인 외로움 같은 것을 상기하게 하시는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발열하는 필라멘트처럼 울부짖곤 한다. 사역자가 된 이후로 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하신다. 작은 나를 만나기 위해 동독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온다. 친구가 찾아와 트렁크에서 10키로짜리 쌀을 꺼내 주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무겁고 슬픈 것을 주머니로부터 아주 조금, 꺼내 보이려다 친구는 황급히 떠났다. 아, 차라리 부둥켜 안고 실컷 울기라도 했더라면 창세기 7장에는 의로운 분이 악한 사람들을 쓸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설교를 준비하며 그 무서운 심판 이야기보다, 방주에 초대된 '부정한' 생물들에 더 마음이 갔다. 나는 스스로 부정한 생물 같은 느낌을 가지는 때가 희한하게 많은 편이다. 거절이 중첩되면..
아침 기도회가 끝난 후, 사랑하는 지인과 커피를 하면서 우리의 고갈이 단 하나의 결핍에서 말미암은 것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지지. 아내와 지인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도서관에 가서 도록 같은 것을 보다가 논문 작업을 했다. 한 문단을 쓰고 나니 사고 능력이 멈춰버려서 다시 지인에게 가서 간단한 일을 돕고,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 기도회에 갔다. 마음이 회복되니 연구에 진척이 있다. 논문 작업이 굴러가지 않던 이유는 기대치가 높았던 탓도 있지만, 동력원이 끊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내 동력원은 늘 사랑이었고, 내 주위 사람들도 그러했다. 사랑받는 자는 효율을 내지 못해도 사랑받는 현실에 변함이 없다. 사랑은 거룩한 약속 같아서 사랑하는 자는 효율을 내지만 효율보다는 늘 사랑..
서점에 가서 독일어로 번역된 하루키의 소설들을 보다가 색채를 잃은 다자키가 잃어버린 친구들이 나의 중학생 시절 친구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모여 그림을 그리곤 했다. 토끼는 새로운 반에 올라가 낯설어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녀석이다. '너 그림 잘 그리지? 나 다 알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 뒤에 우리는 미술지망생인 돼지와 소를 만났고 동물농장 구락부 같은 모임을 매일 가졌다. 우리는 센스쟁이 토끼에 이끌려 방과 후에 늘 농구를 해야 했고 소는 느리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골대 밑에서 나무처럼 늘 팔을 뻗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키가 작았던 나는 바나나를 던지듯 슈팅을 하는 원숭이였다. 나는 한 선으로 그림을 끝까지 그리는 버릇이 있었다. 스케치의 복층적인 어프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