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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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11월 7일

jo_nghyuk 2009. 11. 7. 23:40
마치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 카프카가 발견한 시고쿠 시골의 깔끔한 도서관처럼, 나는 이 포천의 한 변두리에서 깔끔하고 훌륭한 시설의 도서관을 찾아내었다. 이곳은 적잖은 양서에 책을 읽거나 무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공간에 헬스클럽과 샤워장까지 갖춘 곳으로, 지방 도시의 문화시설을 위한 노력을 적잖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공부로 인해 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면 이 헬스장에 가는데, 부위별로 근력을 강화하는 기구에 앉아 운동을 한다. 오늘은 단추가 떨어진 반바지를 가져간 바람에 윗몸일으키기 하나를 빠뜨리고 운동을 했는데 운동이 끝나고 나서 어쩐지 배부분에만 강화되지 못한 허술한 공백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음, 몸의 각 부분part를 골고루 운동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거구나. 성경에도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지 않던가. 구원의 투구로부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까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빈틈없는 무장과 훈련됨.
요즘 공부하다가 기분전환을 위해 쉬는 시간에 하루키 단편 소설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는 중인데, 그는 근육의 훈련_헬스를 자신의 소설에서나 문학잡지와의 대담에서나 거듭 강조하는 편이다. 육체의 건강함이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론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정신 (양서를 읽거나 사유의 발전을 스스로 부지런히 한다든지, 혹은 대화나 글쓰기를 통한), 몸 (헬스, 노동, 운동 등)과 더불어 영의 훈련도 그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셋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건강한 삶을 진정 영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차츰 하게 된다. 나는 작가들의 글에서 어떤 부분은 용납하거나 어떤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 선별과정을 통해서 나의 삶에 그들의 정수 중 일부분을 스크랩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적인 부분에서는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이것은 잠식당하느냐, 정복하냐의 문제이므로 나는 그 어둠의 부분에 있어서 대립할 수밖에 없고 대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상당 부분 낮은 자세로 배워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니 그렇게 의식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작가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그가 삶의 일정부분의 멘토링을 무의식적으로 해주지 않던가. 본질적인 부분을 타협하지 않으며, 주변부의 것들을 분별있게 내 삶에 안정감있는 꼴라쥬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꼴라쥬의 메세지는 진실된 것이며 진리 위에 기초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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