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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올 여름에는 드레스덴에 스치듯 다녀왔다. 열흘 정도 머무르다 왔는데 원래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4주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획된 체류의 반 정도만 머물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삶에서는 작은 순간들Ausblick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작은 순간들을 통해 그것이 나에게 하는 훈계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지혜를 얻게 되는 때가 있다. 나의 독어 선생인 Olgar는 내가 반복되는 단어들을 이니셜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이를테면 spazieren gehen을 s.g.라 쓴다던지 하는 것들) "Du bist faul! Du musst fleissig sein, wenn du lernst!'(너 너무 게을러! 공부할 때에는 부지런해져야지!) 라고 웃으며 책망한 적이 있다. '나는 어짜..
새 사람은 오늘의 사람이다. 그는 어제와의 단절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오늘에 속한 사람이다. 그는 자아의 경향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도 그 말씀으로 인해 새로운 경향으로의 촉발을 받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날마다 새롭다. 그는 오늘 전혀 다른 새로움 가운데 살아있게 된다. 옛 사람은 어제의 사람이며 과거형의 사람이다. 자아의 경향으로서 그 사람은 아래로, 자아 중심적으로 수렴되어지는 사람이다. 생명의 영과 사망의 육을 말할 때, 단순히 우리는 육체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한계성과 하늘의 무한성을 고려하여 유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느끼는 모든 상황과 긍정하는 사고체계와 긴장관계에 놓여있는 새로운 상황, 새로운 ..
어느 순간 자신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이유라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한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유는 내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까지 깨닫게 된다면 그는 이제 정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대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전에는 걷지 않았을, 수없이도 등을 돌리던 그 험난한 준령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짐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넘어져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일어설 수록 선명한 전망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참으로 정직한 사람들만이 이 좁고 험한 길을 울면서, 울면서, 눈물로 씨를 뿌리고, 상하고, 깨지고, 구르면서 먼저 걸어가고 있었으며, 스스로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처럼 뒤에 남..
그래서 언제나 "사람으로부터의" 분별은 완벽한 것을 지향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건강한 것을 지향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잠언은 "지혜는 정직한 길로 다닌다"고 말한다. 정직함이 없는 분별은 "속이는 저울추"처럼 지혜는 있으나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어 미혹의 병기로 악용되어질 것이다. 물론 정직함 또한 지혜가 없다면 "죽이는 순수"가 되어지겠지만. 그러나 나는 정직을 여전히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과 성숙을 인간은 부단히 꾀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도상 위에 있는 미완의 존재로서 인간은 분별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질 수 없다. 차라리 한 발을 뒤로 빼고 정직에서의 건강함을 지향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갖은 모호함과 흐릿함으로 더 깊은 분별을 요하고 있으며,..
백금같이 명징하던 해가 호박죽처럼 초라해지는 시간 왕자가 거지가 되고 늑대가 개가 되며 나약해지고, 깨지고, 부들거리며, 우울하고, 어둡고, 괴로워지며, 쥐어짜는 시간 사랑에 빠진 이들의 심장처럼 곤죽이 되고, 과부하가 걸린 노트북처럼 버벅이고, 방금 꺼진 형광등처럼 놀란 맥박들이 어리둥절하고, 조용한 확신으로 기쁨의 칸타타를 흘려보내던 정원이, 시끄럽도록 슬픈 혼혈아들의 뉴올리안즈 재즈 놀이터로 변한다 윤곽이 흐릿함에도 질료는 그대로 있고 각자가 차지한 공간도 침노당하지 않았으나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세계는 비로소 벌거벗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둠 속으로 당신의 조각들을 넘겨주기 전에, 아직 점멸하는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처럼 의식과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윤곽선과 흐릿함이 동시에 살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