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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게임의 이름은 나쁘다

jo_nghyuk 2009. 11. 9. 21:03

어제는 교회 지체들과 함께 절친의 birthday party를 하면서 8명이서 마피아 게임을 했다.
경찰 1, 의사 1, 마피아 2, 시민 4. 나는 마피아였다. 초반부터 나의 연인이 내 표정을 직관적으로 읽고는 내가 마피아의 표정을 하고 있다며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나는 마피아이긴 하지만 예, 정직하게 제가 마피아가 맞았습니다. 절 보내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내 연인의 직관을 의심토록 하기 위해 타인들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온갖 수법과 화술 (아마 수사법까지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을 동원하여 그녀의 직관의 뿌리에 의심의 토양을 형성시켜 스스로 흔들리게 만들어야 한다. 실로 사단이 우리를 속일 때 쓰는 전략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피아 게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전략은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사고능력과 추론능력의 발달을 위해 마피아 게임은 좋은 훈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8명의 미시적 그룹게임으로부터 세계의 거시적인 비극적 역사를 보는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마피아는 숨어있고, 스스로는 나서지 않으며 시민들이 분란을 일으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다. 그리고는 소란의 틈이 일어나면 교모하게 가세한다. 그리고 하나씩 시민들을 보낸다.

마피아 게임에서 가장 껄끄러운 플레이어의 유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의 주장에 반론과 이의를 제기함과 동시에,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합리적인 알리바이를 납득시켜가며 논리로서 채울 수 없는 나머지 부분 - 왜냐면 이 게임에서는 개인이 스스로를 변론해야만 하는 자연 상태에 각자는 놓여있으므로 - 을 사람들의 신뢰로 채우고 무리를 선동하는 사람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해야하는 자연 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므로 차라리 그에게 편승해서 일처리를 더 쉽게 하고자 하는 심리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대중의 선택'이 되므로 혼자서 싸워야 할 때 그 결과에 대해 자신이 져야 할 단독적인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어느정도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중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방패로 삼고자 하는 심리는 누구나 지니고 있으므로. 그리고 또한 이 게임은 일종의 권력 게임과도 같아서 일단 누가 "나 의사요" 하고 밝히게 되면, 다른 거짓 의사 (그는 마피아일 것이다)가 등장하여 소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는 "절대 시민"으로서의 신뢰, 곧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 게임에 있어서 대중의 신뢰는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공공연한 지목제 처형"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된다. 밤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만약 그가 의사이고 그가 계속해서 밤중에 자기를 살리게 된다면 그는 어쨌든 마지노선까지 불사의 신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절대적 권력자 앞에 '아직 시민의 확진을 받지 못한' 무고한 시민들은 "나 시민이오. 믿어주시오"를 그 의사 앞에 외치게 되고 의사는 "내가 널 어떻게 믿어?"라는 식의 자세가 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껄끄러운 유형은 스스로에게 자신은 시민이다라고 최면을 걸고 게임에 투입되는 마피아 역할의 플레이어이다. 이사람은 감쪽같기가 거의 남파공작원의 수준이어서, 게임에 있어서 상당한 변수요인으로 작용한다. 왜냐면 이미 그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이고' 플레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를 '속인다'라기 보다는 거의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론하는 사람은 이 사람을 배제할 수도, 배제하지 않고 논의할 수도 없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나는 한 번 이런 경우를 보았는데 시민이 그를 죽이려 하여 "네가 시민이어도 이번 게임에서 죽어도 게임은 끝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을 할 때에 "예, 그래요. 그럼 절 죽이세요. 그럼 시민이 이기는 거니까요"라고 말함으로써 나로써 오히려 그를 죽이려 하는 시민을 죽이는 오판을 내리게 한 적이 있다. 나는 논리적인 전자도 힘들지만, 무질서한 후자는 너무 힘들다.

결국에 마피아 게임은 비상한 소수에 의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다수가 동조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고생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수가 그 소수에 의해 끌려갈 책임은 없다. 하지만 이 다수는 너무도 자주 자신의 사유와 주장의 권리를 슬프게도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게임이 진행될 수록 이 슬픈 시민들은 점차 뇌가 피곤해지고 산소가 부족하여 자기도 모르게 생각할 권리를 버리고 수동적 타성에 젖어들거나, 생일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난한 논쟁에 수난주일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 나의 절친처럼 자신의 뇌를 sit back and relax시켜버리고 게임으로부터 뒤로 물러나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시 이 마피아 게임이라는 것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은 바로 무고한 시민이 죽는 때인데, 그건 단순히 내가 그것을 감정적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좌뇌가 푸석푸석해진 이 가련한 시민이 자신이 마피아라는 압도적 표결로 인해 고통속에 "아, 나 시민 아니라니깐! 진짜 아니야"라고 절규하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짜증의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외치는 이 한마디 때문이다 "그래, 죽여라. 하기 싫다. 이런 게임" 심지어 나는 한 순진한 자매 - 자기 주장을 올바로 피력하지 못하는 연약하고 무고한 시민 - 이 사람들이 '넌 마피아야. 그게 아니면 이렇게 무력하게 저항할 수가 없어. 더 적극적이지'라는 말을 할 때에 마침내는 "그래요. 그냥 죽여요. 저 마피아 맞아요"라고 낙심해서 말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이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게임이다. 당신이 시민이라면 지리한 논쟁 앞에 짜증난다고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나는 왜 이 게임 이름이 '마피아 게임'인지 모르겠다. 마피아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심리적 발로인가. 아직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게임이름을 시민 게임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는가. "마피아 게임"은 나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피아 게임의 이름은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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