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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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도서관 수기

jo_nghyuk 2009. 11. 26. 00:06

요스트는 밥을 먹으러 가자면서 나를 암스테르담 시립 도서관으로 끌고갔다. 우리는 예배를 마치고 방금 교회에서 나왔다. 이 교회는 지하실을 리모델링해서 카페 테이블과 서재, 빔프로젝트와 악기 앰프등을 총명하게 배치하여 깔끔한 교회로 탈바꿈한 장소였다. 이 곳에서는 자주 콘서트도 이루어지곤 했는데 내가 갔던 주에도 멀리 미국에서 온 CCM가수 (중년의 금발 여인)의 공연이 있었다. 라트비아에서 날아온 나의 친구들 Man-hu도 이곳에서 얼마전 공연을 했다고 한다. 요스트는 네덜란드인이지만 영어가 주언어인 이 인터내셔널 처치를 다니고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 우리는 운하와 어지러운 거리를 지나 트램의 정거장들이 모여있는 중앙역Centraal Station 뒤로 흐르는 커다란 강Het Ij가에 세워진 Bibliotheek(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내부는 마치 미술관같은 색감을 뽐내고 있었고 각 층마다 비치된 백여개가 넘는 이용자 PC는 전부 애플의 맥이여서 마치 대형 애플 스토어를 방불케했다. 책이 많다는 것과 내가 애플 스토어에서 만났던 검은 셔츠의 험상굳은 직원들을 제외하곤. 
현관 입구 안쪽에는 조그만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었다. 장식용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도서관 폐관 시간 가까이 있을 때 아랫층 로비에서 피아노 선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생소하게 들었던 적이 있었다. 6층의 대기까지 퍼지는 그 피아노 현의 진동울림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전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므로. 나는 그것이 라이브 연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대개 연주자들은 클래식이나 재즈넘버들을 간략하게 몇 곡 연주함으로 저녁의 늦은 어스름이(북유럽은 해가 늦게 진다) 이제 막 현관 앞에 왔음을 어스름지는 현관으로부터 6층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알리곤 했다. 현관 앞에는 독자들이 책장을 덮고 혹은 그 책을 합법적으로 자신의 가방에 넣고 자신들의 집으로 승선할 자전거들이 강가에 빼곡이 정박하고 있었다. 물 위의 도시. 이 물 위로 자전거들이 미끄러진다. 나는 토시Toshi의 자전거를 빌려서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와 할렘Haarlem까지 미끄러져나간 적이 있다. 잔세스칸스까지의 길은 적당히 넓은 농지와 아기자기한 집들이 함께 했다면, 그곳으로부터 할렘까지의 길은 드넓은 평야와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고속도로만이 주욱 늘어져있는 길이었다.
 
암스테르담에는 시립 도서관이 두 군데 있다. 나는 우연히도 두번째 작은 도서관을 영국 성공회 교회에 며칠 머물면서 산책을 하다가 운좋게 발견한 적이 있는데, 먼저 말한 요스트와 함께 갔던 애플스토어를 닮은 도서관이 할렘까지의 넓은 길을 닮았다면, 아기자기하고 조밀한 안네프랑크하우스같은 도서관은 잔세스칸스까지의 작은 길을 닮았던 것이다. 나는 애플스토어 도서관에서는 Woolf를 찾아 읽으려 했지만 독해 능력의 부족으로 금방 탈진했고 주로 Iceland 여행기나 이 북반구 가까이 위치한 섬의 사진이 담긴 안내서와 사진첩을 읽곤 했으며, 3,4층 건물인 (그러나 이용객에게는 2층까지만 오픈한다) 안네프랑크 도서관에서는 에밀리 디킨슨이나 엘리엇의 작고 두꺼운 점잖은 컬러의 하드커버를 한 시집을 카펫 깔린 바닥에 앉아 하나 둘 꺼내 보곤 했다. 내가 정말 좋았던 것은 이곳에는 애플 도서관에서의 애플 컴퓨터나 피아노, 에스컬레이터나 카페라운지는 없었지만 (낡은 커피 자판기는 하나 있었던 듯 하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면 한 방에는 조각품과 추상화들이 걸리고 놓여있는 앤티크하고 자그마한 방이 있었던 것이다. 이 곳의 오래된 소파에 앉아 나는 책장에서 꺼내온 책들을 읽거나 문득 이곳에 놓인 꽃병이나 골동품 기타로 만든 조각품들을 감상하곤 했다.

요스트는 나를 데리고 먼저 6층으로 갔다. 6층에는 카페 라운지가 있었는데 바깥 라운지로 나가면 Het Ij 강 건너로 암스테르담의 전경이 마치 델프트 풍경처럼 펼쳐진다. 요스트는 그 넓은 팔을 발코니에 'ㅅ'자모양으로 기대고 서서 자신의 도시를 음미하고 있었다. 마치 옆에 내가 있다는 것도 잊은 듯, 아니 오히려 내가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응시하는 시선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는 매우 달랐다. 이전에 중앙역 앞에서 그 붉은 벽돌과 조각장식들의 무늬를 보고 싶었는데 끔찍히 몰려오는 무수한 인파의 물결에 내가 암초처럼 걸리적거릴까봐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지나쳐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운하의 다리 위에 그리고 자신의 집 창문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이들의 모습도 오버랩된다. 요스트는 이따금씩 Do not disturb!이라고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자기 방문 앞에 포스팅하곤 했다. 나에게 한글을 배워가서는 나중에 "정숙"이라고 귀엽게 적힌 포스트잇을 방문 앞에 붙여놓기도 했다. 나는 이들의 그런 당당함이 좋았다.

요스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주께서 너의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늘의 아버지를 신뢰하자' 안네프랑크 도서관과 달리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 애플 도서관에서 몇십 센트가 아까워 낑낑거리는 나를 보고 적어도 손은 씻고 밥을 먹자며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요스트에게 식사를 얻어먹었다. 우리는 발코니로 식사를 가져와 우리의 식사를 노리는 비둘기들과 사투를 벌이며 (한번은 혼자 식사를 하러 왔는데 포크와 나이프를 깜박 해서 안에 들어갔다 온사이 내 테이블 위에서 나의 후렌치후라이와 돼지고기꼬치를 먹기 직전인 비둘기를 쫓아내고서 찜찜하게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물 위의 도시인 이곳은 조류의 먹이다툼이 치열하다. 또 한번은 헤이그광장에서 빵조각 몇개를 작은 새들에게 주다가 요한계시록에나 등장할 법한 무섭고 커다란 괴물같은 새 두마리가 저만치서 "꽤액-!"하고 날라오는 것에 기겁해서 빵을 던지고 자리에서 도망나온 적도 있다.) 우리는 식사를 했다. 소금병 뚜껑이 고장나서 자수정 속에 박힌 수정만한 소금들이 연어 위에 우르르, 쏟아졌다. 요스트와 나는 낄낄거리며 이 불쌍한 연어를 혀를 날름거리고 내두르면서 수정같은 소금들과 같이 아각아각- 씹어삼켰다. 짜다 못해 수정소금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썼다. 나는 연어와 소금의 혼합물을 휴지에 뱉고 콜라를 마셨다. 식사 후 요스트와 나는 한글 공부를 하고 현관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자 베이스로 돌아왔다. 





- 이것은 도서관 수기가 아닌 듯하다. Mr.다자이, 너의 단편도 소설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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