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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jo_nghyuk 2009. 11. 26. 20:10

일본 문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아리가토'라고 해야 할 상황에서 종종 '스미마셍'이라고 한다는 것. 그것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의 극단적 표현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예의바른 일본인들이 '혼자서는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못 건너도 집단으로는 건넌다.'고 자조한다. 혼자서 옷을 벗는 것은 창피해도, 목욕탕에서 집단으로 벗는 것은 창피하지 않은 법. 이는 법규를 지키는 문화조차 수치심 위에 세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연대 책임은 무책임'이라 표현한다. 이는 똑같은 현상에 대한 군사주의적 표현이다. 신의 눈길은 인간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고, 인간들의 눈길은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주체 형성이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자기반성의 능력을 갖춘 '개인'의 형성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남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성원'의 형성으로, 때로는 연대로만 책임을 지는 '대원'의 형성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문화는 남의 시선에 민감하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청소를 하던 시민들이 왜 2006년 월드컵 때는 거리를 쓰레기 더미로 만들었던가? 대답은 간단하다. 2002년에 한국은 주최국으로 세계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반면 2006년에는 세계의 시선이 독일에 쏠려 있었다. 이것은 한국인이 공중도덕조차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위해 지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중에서


나는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 트램이 지나다닐 레일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고풍스럽고 섬세한 붉은 중앙역을 멀건히 바라보면서. 이 역을 만들기 위해 암스텔 강하구에 인공섬을 만들고 8687개의 말뚝을 박아 기초 공사를 하고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1889년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정직한 악바리들, 나는 생각했다. 강 위에 네오 르네상스 풍의 아름다운 붉은 벽돌 기차역을 세우려면 강 하구에 인공섬을 짓고 만개에 가까운 말뚝을 박는 단단한 기초공사가 필요한 것이다. 낭만은 그저 뜬 구름을 잡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백조의 수면 밑 바지런한 다리들을 떠올렸다. 나는 나의 시선의 자세를 고쳤다. 멀건한 시선에서 단단한 시선으로. 그리고 붉은 벽돌 하나하나와 조각 장식의 디테일, 커다란 시계와 창문들을 정직하게 뜯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인파 한가운데에 있었고 인파들에게 나는 거슬리는 장애물 내지는 커다란 1.8미터짜리 허들같았을 것이다. 인파의 물결은 허들을 건너뛰듯이 나를 넘어 넘실거리며 지나갔다. 중앙역 앞의 통로는 (그리고 벽돌 하나하나와 시계와 그 모든 디테일과 함께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은 이 곳뿐이었고 또 마침 공사중이라) 매우 좁았다. 이따금씩 하얀 바탕에 파란 줄이 모던하게 어우러진 트램이 따릉따릉 경적을 울리며 뱀같은 몸체를 구부려 내가 서있는 통로 옆에 딱 붙어 기어 지나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올바르게, 아쉽지 않도록 가깝게 (그리고 적정하게 떨어져) 중앙역을 관망할 수 있는 위치는 정확히 이 좁은 통로 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 예민한 자의식이 어떤 사소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쓰느라 피곤한지 또한 발견하고 있었다.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얘 뭐하니?'하는 표정 혹은 좁은 통로에 걸리적대는 암초를 만나 다소 귀찮은 듯한 (햇살이 쨍한 날이라 표정이 더 찌푸려져 있었다)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두번째 시도였다. 첫번째는 물러터진 반응으로 밀려났지만, 이번엔 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5년 전 봄, 오사카의 라디오헤드 콘서트 홀 맨 앞자리에서 미적미적대다가 뒤에 있던 다른 일본인 남자녀석에게 내 맨 앞자리를 빼앗겨 공연 끝날 때까지 화투의 달광에의 검은 언덕처럼 빛나는 톰요크가 그놈의 뒤통수에 거슬리게 걸린 채로 노래하는 것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봐야 했던 전례가 있는 남자란 말이다. 그리고 첫번째 시도와 달리 이번에는 좀 더 담대했는데, 그것은 며칠 전 바로 이 장소 부근에서 사람들에게 미친 척 반나절동안 프리 허그free hug를 외치면서 수만명의 보행을 가로막고 수십명을 안아주었던 다소 특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쑥스러움을 잘 타 겉으로 냉소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미국인들과 많이 다르고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편에 속한다. 덕에 나는 상대방의 거절에 대해 굳은 살이 튼튼하게 배기는 하루가 되었다.) 나는 흔들리려는 시선을 계속해서 붙잡았다. 사람들아, (그리고 중앙역을 통과하는 이방인들아,) 나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시선, 단단하게 고수해야 빼앗기지 않는다. 나는 힘겨웠던, 그러나 단단하고 굳게 페달을 돌리며 완수했던 암스테르담에서 잔담으로 잔담에서 할렘으로 할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어진 지난했던 (그리고 지난하게 완수했던) 자전거 여행을 생각한다. 8687번째 말뚝을 불안정하고 나약한 내 심정의 바닥에 박아 넣어 단단한 인공섬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이 시선 속에 저 붉은 중앙역을 온전히 스케치해내기 전까지 나는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사람들아, 이것은 나 자신의 중악역의 구축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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