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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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랴 크라소트킨

기계치

jo_nghyuk 2009. 12. 29. 17:22

 

산은 높은/ 하늘에 입맞추어 주고/

파도는 거칠게 내리치는 서로를 포옹을 하며/

햇빛은 식어버린 대지를 따스히 보듬어주고/

바람은/ 근심에 가득 찬 한숨을 가리는 키스를 하는데/

나 자신조차 홀로/ 외롭게 서있는 늑대를 사랑할 수 없네/

 

요즘은 셸리의 시를 읽고 있다. 국어 시간에 바이런을 읽고 나는 방과후 바로 반디 앤 루니스에 가서 여러 낭만 시인들의 시집을 촤르륵 촤르륵 핥아보다가 놀라울 정도로 천재적인 영감이 깃들인 시 한 편을 셸리의 시집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바이런도 좋았지만, 묘사의 섬세함에 있어서는 셸리가 더 우월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 섬세함 때문에 그리고 그의 이름 때문에 시를 반 정도 읽다가 시집 뒷부분에 달린 해설을 읽기 전까지는 이 시인이 여류 시인인 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이 시구가 너무 맘에 들어 내 랩 verse 4줄이나 할애해서 라임도 없이 (rhyme : 시의 각운처럼 랩에서 비슷한 발음의 각운을 달아 랩의 언어적 효과나 음성학적 효과를 높이며 flow, 즉 랩의 전체적 높낮이의 흐름과 리듬감을 한층 더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랩의 장치) 초반 4줄을 진행시켜야만 했다. 젠장, 영국인들은 좋겠군. 셸리의 원서에는 이 구절이 다 라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4번째 마디와 5번째 마디의 끝에 하는그리고 없로 어떻게 라임을 맞추고 첫째 마디의 높그리고 주고와 셋째 마디의 보듬어주고넷째 마디의 바람등으로 조악하게 1차적 라임만으로 (일차적 라임: 단순하게 음절이 완전히 일치하는 라임을 일차적 라임이라고 한다. 라임이 더 복잡하면 이차적 라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표의 속에 발음이 은유처럼 은근히 숨어 있을 때 차원이 높아진다고들 얘기한다) 각운을 달아놓고 보니 플로우가 딱따구리처럼 정직하게 메트로놈을 치게 되버렸다. 그리고 하나 더 느끼는 것은 역시 플로우는, 가장 최근에 인상깊었던 랩퍼에게서 어쨌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Damnit, 요즘 Kero One을 너무 많이 들었어, 한준이 형이 다양하게 많이 들어야 는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꽂히는 랩 스타일이나 보이스가 아니면, 잘 듣지 못하게 되버린단 말야.

 

나는 국어와 영어를 제외하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저번 시간에도 뚱뚱하고 파마머리를 한 얼추 많이 늙은 남자 음악 선생이 단소를 몇 주일 째 못 부는 것은 나뿐이라며 단소로 머리를 때렸다. 차라리 미술 시간이 나는 좋다. 그 선생은 나름대로 유연한 사고를 지닌 분이어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붓으로 얼굴을 간지럽힌다던가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을 한다.

세상에는 고흐 파와 램브란트 파가 있는데, 혁이 너는 고흐 파인 것뿐이지.”

체육 시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배구 따위를 할 때 토스가 제대로 손목 밑 부분에 맞지 않아 공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 3의 방향으로 궤적을 튼다든지, 농구를 할 때 레이업이 잘 안되서 레이업인지 어정쩡한 점프 슛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이 연출된다든지 (축구를 할 때의 개발은 말할 것도 없다.) 하는 상황 자체가 싫어 나는 체육계의 루저들과 함께 (보통 앞 번호 애들이 많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가지로 땅을 비비적거리다 들어오는 게 일수이다.

한 마디로, 나는 내가 어느 정도 모양새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별로 시도를 하지 않으려는 타입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 탓에, 친한 친구도 많지 않다. 그래서 학급에서 누구도 내가 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하필이면 음악 이론수업 시간에) 내 라임노트에다가 최근에 가입한랩 동호회 정모 공연을 위한 습작을 끄적거리다가 음악 선생에게 걸리고 만 것이다.

 

어라, 이 놈. 그리라는 콩나물은 안 그리고 뭐, 첫 번째 출격, 그것은 새로운 세상과 충돌하는 내 자아의 충격? 이 뭔소리고?”

하하하하하!”

 

   나는 당연히 내 라임노트를 빼앗겼고 그날 이후 나는 학급 장기자랑 시간마다 불려가 랩을 하곤했다. 평소 발표 시간에는 말까지 더듬게 하던 나의 대인공포증에 가까운 이 과도한 긴장이, 랩을 할 때는 날 선 검처럼 오히려 스스로를 짐승처럼 날카롭고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학급 녀석들은 내가 꽤 담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었다. 랩을 할 때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하는데, 그 이후로는 학급 내에서 세력을 좀 가진 녀석들도, 전과 다르게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내 랩명을 이라고 하였다. 스스로 학급 내에서 늑대처럼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도 자유롭고 좋았던 것이다. 주류가 되는 제 1그룹도, 그리고 그에 종속이 되는 2그룹도 아닌, 한마디로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 개체인 것이다.

우연찮게 학교 도서관에서 롤랑 바르트의 S/Z를 읽고 그 이론에 매료되어버린 나는, 스스로의 랩명(랩명:aka “누구누구라고 불리우는 랩퍼들의 닉네임 같은 것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이나 신조가 될 만한 이름을 랩퍼는 스스로에게 만들어 그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 예를 들면, Drunken Tiger Tiger Jk는 랩명이고 서정권은 그의 본명이다.)늑대에서 절반을 자른 으로 하게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온전한 늑대가 아니므로, 늑대가 될 때까지는 절반의 늑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늑대의 삶이 좋았다.

 

한준이 형은 그럼 너는 먹이를 먹지 않는 늑대로구나라고 말했다. 한준 형은 대학생인데 나는 엔지니어를 배우는 친구를 통해 이 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랩퍼는 한준 형이었다. 형은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기계치라는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외모만 보면 뿔테안경에 체크 남방과 면바지를 입은 조용하고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지만, 내가 자신하기로 형은 언더그라운드 내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가진 랩퍼이다.

 

혁아,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해. 그게 뮤지션의 기본이야. 요즘 열심히 듣고 있니?”

아니요,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데 귀에 잘 감기지가 않아요.”

너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하려면 작곡을 할 줄 알아야 하고 꼭 그렇지 않아도 혁이 너 스스로의 곡 해석 능력을 키워야 해. 잘 감기지 않는 음악도 나중에는 다 자양분이 되거든

 

이렇게 한준 형의 어드바이스를 들으면서도 나는 여러 다양한 음악을 듣기 보다는 아직도 취향에 맞춰 듣고 있다. 알면서도, 듣기 싫은 음악을 어떻게 억지로 듣는단 말이지? 차라리 그 시간에 체호프의 극을 보는게 가사전달력이나 문학적 감성을 키우는데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확실히 나는 랩쟁이였다. 힙합에는 DJ형 뮤지션과 MC형 뮤지션이 있다. 주로 DJ형은 음악을 수집하고, 짜집기하고 샘플링을 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거나 믹스하는 스타일이고 MC형은 그런 DJ가 가져온 음악 판 위에서 자신의 메세지를 또박또박 대중에게 전달시키는 스타일인 것이다. 하지만 주로 좋은 MC는 음악을 수집하고 꼴라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DJ형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한준이 형은 말한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나는 차라리 시 열 편을 쓰는 편이 레코드 열 장을 믹스하는 것보다 즐거운 사람이고, 그래서 나와 맞는 DJ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해서 언더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굶어가는 늑대인 거다. 네 말대로, 넌 지금 늑대의 영역에 한쪽 발만 걸치고 있는 애매한 개인거야

맞는 말이다. , 한준 형 팀에 들어가고 싶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형은 훌륭한

프로듀서 기질이 있어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뮤지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좋은

(게다가 내 음악적 입맛에 맞는) DJ가 필요하다. 그래야 랩을 할 수 있다. 학교 축제나 동호회 정

모 공연에서는 내가 Sound Providers mr이나 Daft Punk의 반복적인 트랙 위에 랩을 해도 상관

이 없다. 그러나 언더 씬에서는 다르다. 그리고 나는 리스너들앞에서 랩을 하고 싶지 친구들

앞에서 취미로 랩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동호회는 리스너들이 모여서 그런대로 공연하는 맛이 난다. 문제는, 실력파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번 동호회는 대학생 형들과 함께 조인트로 공연을 했었는데 역시 아마추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대학교 동아리에 들어가도 역시 취미로는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녀석만은 달랐다.

 

나는 학교에서 내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친구들 셋을 데리고 동호회 정모 공연에 갔었다. 오프닝도 나름 유명한 언더 뮤지션이 재학중인 대학교 동아리가 열었고, 내 공연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었다. 나는 DJ를 만나기 위해 이 동호회에 들어가 내 또래의 고등학생 두 명과 함께 팀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었다. 한 명은 작곡을 할 줄 알아서 우리는 우리의 “DJ이 사는 신림역으로 매일같이 모여 연습을 하곤 했다. 혼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 속에서 mr을 들으며 숱하게 중얼중얼 연습을 했다. 공연이 끝나자 많은 대학생 형들이 플로우가 좋다며 우리를 칭찬해 주었다. 이 날 처음으로 셸리의 시를 verse로 썼는데 이 가사도 반응이 좋았다. 의기양양하게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가 자리에 앉아 다음 팀을 구경했다.

 

다음 팀은, 솔로네요? 랩명은 라이언, 고등학생이라고 합니다. 우리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짝짝짝

 

무대에 우리와 같은 고등학생이 올라왔다. 노란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키는 조금 작았다. 예전에 한준형이 나에게 너는 키가 좀 커서 무대에 오르면 약간 허술해 보일 수도 있겠다하는 말을 한 게 떠올랐다. Mr은 자작곡, 키가 작은데도 왠지 무대와 잘 어울리는 그루브를 하고 있었다. 표현력 풍부한 손짓과 회중의 눈을 맞추는 저 담대함, 나는 무대에 서면 회중을 잘 보지 못한다. 천성이 내성적이어서 겨우 고개를 드는데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플로우였다. 프로도 하기 힘든 놀라운 강약조절과 비트를 비틀고 쪼개는 스킬이 일품이었다. 힙합을 처음 입문할 때 듣는 랩의 3대 요소 라임, 스킬, 플로우의 삼각형 그래프를 만든다면 커다란 정삼각형이 시원하게 그려질 법한 실력이었다.

 

공연은 돌풍처럼 끝나버렸고 사람들은 곡이 끝난 뒤 마치 태풍의 눈 속에 있기라도 한 듯 일초간을 멀뚱히 잠잠하게 있다가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단연 최고였다. 사회자도 벙찐듯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정말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입니다! 엄청난데요! 대학생보다 더 나은 고등학생이네요! 솔로 무대는 정말 힘든 법인데!”

맞는 말이다. 솔로 무대는 최소한 팀 무대의 세 배 이상 에너지와 무대관리 능력을 필요로 한다.

팀 이라면 한 사람당 16마디의 verse와 싸비 8마디 정도를 평균으로 쓴다면, 솔로는 한 사람이 적어도 64마디 정도는 소화해야 하고 싸비도 혼자서 외쳐야 하므로 지금과 같은 파워풀한 공연을 소화하려면 큰 성량과 호흡을 가지고 있어야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다. 게다가 녀석은 무대를 휩쓴다,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대의 각 장소를 마치 파워포인트 스크린처럼 자신의 메시지를 프레젠테이션하기에 가장 적절하게 움직이며 활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와 같은 팀의 두 친구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 그 이후로 그 날에 대해 서로 언급하지도, 다시 팀을 만들지도 않게 되었다. 학교 친구 세 놈은 다음날 학교에서 내 실력은 사실 학교에서나 먹히지 밖에 나가면 완전 털릴 실력이었다며 시끄럽게 내 창피를 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며칠 뒤 나는 한준 형을 만났다. 형의 팀 기계치의 첫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그래, 완전히 털렸다고? 하하

기분은 나쁘지만 사실이다. 완패였다. 내가 가장 갈망하는 방식 (솔로잉)으로 나는 만들지도 못할 곡을 작곡하고 생각지도 못할 무대매너와 감기는 플로우로 회중을 움직이지 않았던가. 지극히 고전적인 말이지만 MC Mic controller가 아니라 Move the Crowd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마이크를 컨트롤했지만 녀석은 회중을 컨트롤했다고.

너무 상심하지마. 임마, Mic Check 1,2,3만 하는 Mic Checker도 많아. 그건 그렇고, 오늘 내 공연은 맨 끝 순선데, 괜찮아? 거의 막차 시간인데

, 괜찮아요

그래, 그럼 끝나고 보자

나는 바닥에 체크 무늬 타일이 깔린 지하의 클럽으로 들어갔다. 공연비를 내고, 닥터 페퍼를 달라고 했다. 언더의 뮤지션들. 동호회나 축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함이 스피커에서 느껴진다. 나는 어쩐지 항상 오른쪽 스피커 앞에 있게 된다. 사람들이 이 자리를 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이 자리를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무대는 제일 가깝다. 언제쯤 온전한 늑대가 되어서 저 무대의 황야에 설 수 있을까. 아직도 나에게 무대는 제어하기 너무 넓고, 회중들은 움직이기 너무 큰 숲이다. 무대에 선 나는 고독해지고, 회중들은 군집해있다. 황야에 서서 숲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늑대의 일이다. 숲 대신 가늘은 묘목 같은 두 다리가 황야에 단단히 심기우지 못하고 흔들린다. 그게 지금의 나다.

 

---- --두둥-- --

 

!!!!!!!!!!!!!”

 

어두운 조명 속에 기계치가 등장한다. 한준형은 자기 팀 멤버들 전체가 기계치라고 전에 내게 귀띔해준 적이 있다. 아무도 그 팀 이름의 유래를 모르지만, 사실은 매우 간단하고 허술한 것이어서, 그리고 쑥스러워서 알리지 않았다면서.

 

 

   가을을 훔쳐 비트에 담궈 Korean poetry

   스피커에서 뿜어나오는 가을에 녹이는 언어들

 

 

나는 형의 가사도, 곡도 모두 좋아한다. 형의 가사에는 깊은 성찰 같은 것이 담겨져 있어서, 랩을 든는데도 상징주의 시를 읽는 것 같은 감흥을 느낀다거나, 훌륭한 철인의 책 한권을 읽는 것 같은 지성의 필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곡은 가사에 어우러지기에 부족함이 없고, 샘플링 속의 기타 현 하나하나가 낙엽이 떨어지듯 스피커와 귀 사이에서 바스라지고, 커다란 스피커 앞에서 듣는 비트는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내 심장을 쿵쿵쿵 펀치한다. 스피커 앞에 서면 비트와 함께 부는 바람을 코와 입과 눈으로, 가슴으로, 다리와 온 몸으로 맞게 된다. 비트의 바람이 분다. 심장을 때리고, 귀를 만지는 소리들. 한준형이 발화한 낙엽이라는 단어가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어 귀와 가슴 위에서 바스라진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감상에 한참 젖어 있을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한준 형의 바톤을 이어받는다. 조명이 켜지고, 노란 머리, 찢어진 눈매, 조그만 체구,


 

라이언이다.


인사해, 우리 팀원들이야.”

공연이 끝나고 한준 형을 찾아가자 형이 라이언을 소개했다.
“…
안녕하세요, 전에 뵈었는데기억나시나요?”

라이언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럼요. 정말 그때 잘하셨잖아요

“… 아니에요, 너무 부족하죠

생각보다 라이언은 조용하고 겸손했다. “사실 그때 한준 형 밑에서 곡을 만들고 있었는데 혼날 걸 알면서도 독자적으로 나갔었어요. 혁이 씨 가사 좋던데요. 부러웠어요

고양이 이놈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 주제를 모르고 동호회 정모에 나갔지 뭐야, 그날 같이 공연했던 대학생 중에 언더에 아는 녀석이 있어서 나한테 고양이 녀석 왜 거기 있냐고 그러더라고

너무 무대 데뷔가 늦어져서 그때 같이 작업하던 곡 들고 한번 연습 삼아 갔었던 거였는데…”

 

나는 물었다. “랩명이 라이언 아니었나요?”

? 라이언?” 한준형이 대답했다. “이 녀석 이름이 고영이거든. 이고영, 그래서 랩명을 자기가 고양이라고 지었어. 라이언은 무슨, , 고양이, 랩명 바꿨냐?”

라이언이 머쓱한 듯 중얼거렸다. “, 아니요데뷔 전에 이름 팔리면 안되서 그냥 지은거에요…”

나는 피식 웃었다. 헤어지기 전에 우리는 길에서 오뎅을 같이 사먹고 서로 인사를 했다.

혁아, 잘 가라. 음악 열심히 듣고

, 열심히 들을게요

 

지하철에서 나는 ATH SJ-5 헤드폰을 꺼내 평소 잘 듣지 않던, 한준 형이 추천해준 음악들을 들었다. 기계치는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지고 있었다. 그럼 늑대도 열심히 친구 사귈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움직이려 했던 낯선 숲을 떠올린다. 황야 같은 고독한 무대에 올라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낯선 얼굴의 군중들. 그 생각은 틀렸던 걸지도 모른다. 그 숲은 라이언이 무서워서 흔들렸던 것이 아니다. 나의 학급 친구들의 숲도 내가 무서워서 흔들렸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낯선 숲으로 왜곡하여 보았던 건 나 자신이었다.

오는 길에 나는 내가 왜곡했던 셸리의 시 구절을 지우고 라임노트에 대신 원래 시를 적어넣었다.

 

 

Love's Philosophy/Percy Bysshe Shelley


The fountains mingle with the river
And the rivers with the Ocean,
The winds of Heaven mix for ever
With a sweet emotion;
Nothing in the world is single;
All things by a law divine,
In one spirit meet  and mingle.
Why not I with thine?--

See the mountains kiss high Heaven,
And the waves clasp one another;
No sister-flower would be forgiven
If it disdained its brother;
And the sunlight clasps the earth,
And the moonbeams kiss the sea:
What is all this sweet work worth
If thou kiss no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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