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아이슬란딕 1 본문

콜랴 크라소트킨

아이슬란딕 1

jo_nghyuk 2010. 2. 6. 00:42

아이슬란드로, 구정 연휴에. 미치지 않고서야. KLM 네덜란드 국적기 안에서 haring(청어)에 감자가 곁들여진 기내식을 받으며 되뇌였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광막한 피요르드, 무심하게 떠 있는 유빙, 날선 바람이 부는 빙하 협곡을 하이킹하거나, 발 아래가 펄펄 끓는 휴화산 지대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라지고 있는 유라시아 지각 판 사이를 달린다든지, 하는 모습을 뜬금없이 상상해버린 이후부터는 뇌리에서 곧잘 떠나질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도 아주 추운 겨울 시즌에만 오로라를 볼 수 있다라는 어떤 블로그에서 읽은 코멘트가 자꾸 떠올려졌다. 하지만 분명, 대한민국 국민 아마도 전원이 자국 내에서만 바삐 움직일 이 설 연휴에, 비수기 티켓을 끊고 북극권으로 혼자서 간다는 그 행위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자만의 어떤 농밀한 매혹이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 인터넷으로 KLM 항공사 홈페이지와 Icelandair 홈페이지에 접속해 2 13일 출발 항공편을 구매해버린 것이다.

경로는 인천(14:00)-스키폴(19:15 도착, 익일 12:00 출발)-케플라빅(아이슬란드 15:00 도착)

 

아이슬란드 여행의 교통수단은 버스를 타거나, 지프를 빌리는 일이다. 그리고 하이킹이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은 모든 아이슬란드 경험자의 공통된 말이었다. 그래서 80리터짜리 노스페이스 가방을 중고나라 카페에서 직거래를 통해 구매하기로 했다. 어제 종로 반디 앤 루니스에서 아이슬란드 여행서를 찾았지만 영어로 된 론리 플래닛 아이슬란드 원서 말고는 구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전자사전을 챙기고, 추운 나라라 배터리 소모가 극심하므로 전자사전을 위한 AAA 건전지 5개들이 세트를 사두었다. 프린트 해놓은 블로그와 웹페이지 문서만 해도 수십장이다. 나는 그것을 회색 파일에다가 페이지당 두 장씩 철해두었다.

핸드폰은, 일단은 정지를 시켜놓았다. 회사에서 전화가 올라는 없지만, 연휴가 끝나고 나머지 휴가를 붙인 당분간 며칠은 거래처에서 사정을 모르고 나에게 전화를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까지 가서 영문 모르는 거래처 전화를 로밍으로 받고 싶지는 않다. 구정 연휴라고 또 여기저기서 전화가 올 테지만, 아무도 내가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수도에 가는 것을 모른다. 가뜩이나 추운 아이슬란드를, 구정 연휴에. 미친 놈으로 생각할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일정은 7 8. 토요일에 떠나서 일요일에 돌아오게 된다. 상무 이사님에게는 가족이 샌프란시스코에 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었다.

 

지금 발 밑의 내 카메라 가방 안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와 수첩, 그리고 니콘 D90, 아이팟 클래식 80G ATH-SJ5 헤드폰이 있다. 정 추우면 귀마개로라도 쓰겠지. 시규어 로스 앨범 전집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독주 앨범을 동기화해두었다. 혹시 몰라 아이슬란드어 회화 Podcast도 다운로드 받아두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스키장에 갈 때 사두었던 스키복을 지금 입고 있다. 외투는 이거 하나면 되고 방한용으로 바람막이와 방상내피를 챙겨두었다. 바지와 속옷은 젖을 것을 대비해 충분히 챙겼다. 신발도 얼음 위를 걷다가 젖어 갈아 신을 것을 대비해 하나 더 챙겨두었다. 라면을 종류 별로 세개 씩 열두 개, 햇반을 열 개 챙겨두었다. 아이슬란드의 물가는 천정부지라고 들었다.

 

입에 맞지 않는 청어를 입에 넣으며 창 밖을 보았다. 이륙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이제 열 몇 시간 후면 나는 얼음의 땅을 밟을 것이다. 기내식을 치우고 스프라이트를 마시며 론리 플래닛 책자를 꺼내들었다. 여섯 명의 남자가 뿌연 하늘색 빛깔의 블루라군 온천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표지이다. 나는 블루라군 온천에 가지는 않을 것이므로 표지를 넘긴다. 돌고래 쇼보다는, 겨울 바다에 나가서 대구 낚시를 해와서 햇반과 같이 구워먹는 것이 이번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머리 속으로 다시 한번 내가 레이캬빅에 묵을 숙소의 이름을 떠올린다. 게스트하우스 오딘이라는 곳이었지. 일단 이곳에서 이틀 숙박을 하고 골든 서클 투어를 할 예정이다

(골든서클: pingvallavan(거대호수), Geysir(간헐천), Gullfoss(폭포)모여있는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투어 코스이다) 그리고는 Hofn에 가서 커피를 사고 벤치에 앉아 바닷가에 떠있는 유빙을 구경하며 이틀 정도 있다가 다시 레이캬빅에 돌아오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끔뻑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돌고래 같은 보잉기가 창공을 헤엄치고 있었다.




--2편에 계속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