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아이슬란딕 5 본문

콜랴 크라소트킨

아이슬란딕 5

jo_nghyuk 2010. 3. 5. 00:44

일본 사람입니까?”

옆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일본어였다. 짧은 커트를 한 여자는 기타 같아 보이는 가방을 옆에 두고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일본어로 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 한국 분이시군요. 일본어를 하십니까?”

, 회사 업무 차 일본에 가끔 갈 일이 있어서 일본어를 조금 배웠습니다

여자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일본에도 화산과 눈을 볼 수 있지만, 두 개가 함께 있는 곳은 없어서, 호기심 때문에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로 했다고.

저건 기타입니까?”

, 레스폴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기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일렉 기타? 혹시 공연 때문에 오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여행이지만, 왠지 가져오고 싶었다, 고나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라고 일본어로 예의 상 대답하긴 했지만, 곧바로 빙하 앞에서 작은 앰프를 두고 일렉을 연주하는 생경한 이미지가 떠올라버려서, 나는 그 뒤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보는 듯한 뉘앙스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화제를 돌릴까.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기계문명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게 차라리 더 쉬울 것 같았다.

“Full circle highway passport를 구매하실 생각이십니까?”

다행히 그녀가 먼저 다른 얘기를 꺼내었다.

아니요, Golden circle package를 살 예정입니다, 그건 뭐죠?”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티켓입니다. 저는 이 티켓을 사려고 합니다. 버스로 일정 기간 동안 마음껏 타고 내릴 수 있지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거 꽤 낭만적인 걸요

대화를 하는 동안 버스는 BSI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아키코와 인사를 하고, 예약했던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해 예약을 취소하고, Full circle highway passport를 사기로 했다. 5시 출발 버스가 있어서, 바로 출발할 수가 있었다. 계획이 전면 수정되었다. 나는 앞으로 8일 동안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는 버스만을 타는 것이다. 폭포와 간헐천을 포기한 것은 다소 아쉽지만 새로운 루트에 대한 흥분이 더 컸다. 

12번 버스에 탄 나는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그래도 대책도 없지, 계획도 없이 무작정 승차해버리다니, 일본 매니아의 말만 듣고.

그녀는 후사빅에 가서 북극의 고래에게 일렉을 연주해 줄 거라며 나와 반대 방향의 루트로 버스를 타고 떠났다. 겨울엔 숙소 잡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엄지와 입가를 함께 치켜 올리는 것을 마지막 인사로 하고.

나는 가방에 들었던 론리 플래닛을 꺼냈다. 적어도 어디서 내릴지는 결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책 속의 활자는 짙게 깔린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질 않았다.

 

 

 

--6편에 계속

 

 

<이번 편에는 boyhood님의 아이슬란드 여행기 중 1편의 이동경로를 차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케플라빅 공항 - 레이캬빅 - 12번 버스)
이 경로는
http://myboyhood.tistory.com/entry/아이슬란드-여행기-1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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