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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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랴 크라소트킨

시모츠지 상 이야기

jo_nghyuk 2010. 3. 5. 11:47

2008 1, 삿포로에서의 이야기이다.

세 명의 동생들과 함께 나카노시마에 있는 삿포로 교회의 교인인 시모츠지 상의 집에 두 주간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처음 시모츠지 상을 소개받을 때 그의 희극적인 표정과 행동에 다소 우리는 당황했다. 혼잣말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거나, 과장된 듯한 액션이라든가 그의 희귀한 표정을 볼 때마다 우리 팀원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재밌어했다.

 

처음 그의 집에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짐을 그의 중형차 뒤에 놓고, 그의 차를 타고 먼저 코인 세탁기 가게에 들러서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해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야말로 시모츠지 상은 영어 울렁증을 가진 한국인과 별반 다른 게 없는 것이었다. 해서 나와 팀원들 중 일본 애니를 즐겨보는 한 명인 모세는, 시모츠지 상에게 짧은 어휘와 긴 바디랭귀지 그리고 의성어, 감탄사 등을 써가며 한 문장 한 문장 겨우겨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도 우리의 시모츠지 상은, 청취자는 고려하지 않고 JPT 급의 질문과 혼잣말을 뒤섞어서 스마스마에서 나가이가 신고에게 말을 하는 속도로 문장을 만들어서 그것을 쟁반에 얹어 우리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일본어가 짧은 우리로서는 숱한 오역의 급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대답이랍시고 우리가 돌려줄 때마다 시모츠지 상은 비웃으며 그 얘기가 아니잖아, 라는 말과 함께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다시 중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한마디로, 이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무척이나 해괴하고, 당황스럽고, 급작스럽고, 약간은 언짢은 것이었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마자 우리는 경악, 아니 뜨악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일본 사람의 전형인 창백할 정도로 정갈하게 정리된 방을 보아서가 아니라, 김밥 옆구리가 터진 것 같이 지저분한 방을 보아서였다. 비유로 표현을 하자면, 그러니까 진도 6.0 정도의 지진이 삿포로에 나서 시모츠지 상이 집에 없을 때에 책꽂이나 부엌 선반, 냉장고, 책상들이 죄다 엎어져서 하루 일과로 너무 지친 시모츠지 상이 그것을 차마 다 정리하지 못하고 내용물이 아닌 그것의 그릇의 격이 되는 것들만 (예를 들자면 쏟아진 책들은 그대로 놔두고 넘어진 책꽂이만 다시 세워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정리한 듯한 방이었던 것이다. (물론 책은 책꽂이에 있었지만 정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다한 물품이 널려 있었다. 백사장 해변에 깔린 조개 더미의 비율 정도를 생각하면 알맞겠다) 시모츠지 상은 그냥 그 위에 이불을 깔아버리고는 여기서 자면 된다고 말하고는 샤워실로 들어가버렸다.

 

그가 샤워실로 들어간 사이 우리 사이에선 중대한 회의가 벌어졌다. 정말 이 집에서 이 주를 버틸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집을 러브 하우스처럼 체인지해주는 것은 어떨까, 아니 그렇게 한다면 일본 사람의 정서상 자기 집의 패턴이 변한 것에 화를 낼 수도 있다, 지금 이 어질러진 시스템이 우리 눈에는 혼돈이지만 그에게는 아주 익숙한, 손만 뻗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를 성가시게 하지 말자, 는 논의가 오고 갔다. 한마디로 이 집은 우리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일본인의 집과 거리가 멀었다.

 

다음날 사역을 위해 일어난 우리는 지난 2주 동안과 다른 어떤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집이 실컷 어질러져 있어서 굳이 신세지는 입장으로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이불만 한 켠에 치워놓은 채, 우리는 각자의 캐리어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눈이 가슴팍까지 쌓인 삿포로의 동네를 걸어갔다. 우리는 기차역까지 걸어야 했는데, 내 기억에 남는 풍경은 엄청나게 많은 눈과 엄청나게 큰 까마귀 뿐인 것 같다. 어딜 가나 높게 쌓인 하얀 눈과 큼지막하고 두툼한 몸체의 까만 까마귀가 색조 대비를 이루며 보였다.

 

사역이 마치고, 7시가 되면 우리는 다시 기차를 타고, 기차역으로부터 10분 거리의 시모츠지 상 집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에 우동 집이 있었는데, 금전부족으로 들어가보질 못했다. 시모츠지 상은 먼저 들어와 티비를 보고 있었다. “들어왔냐? 한 명씩 샤워하면 돼

우리는 한 명씩 들어가 샤워를 했고, 네 명이 다 나오자 시모츠지 상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삿포로 산 우유와 플레인 요거트였다. 특별히 우리가 머무는 기간에 네 배 많은 양을 사온 것처럼 보였다. 시모츠지 상은 요거트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삿포로에는 요거트와 치즈가 유명하다는 부연도 없었다. 왜 사왔는지 말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요거트를 까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조용히 스푼을 (아주 깨끗이) 씻어 다섯 명 분을 가져왔다. 우리는 요거트를 떠먹으며 함께 조용히 시모츠지 상이 보는 티비를 보고 11시가 되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 후로 저녁에 다 같이 샤워를 하고 나면 삿포로의 플레인 요거트를 먹는 것은 우리의 소소한 기쁨이 되었다. 처음에는 플레인의 강한 맛에 힘들어했으나 (우리의 무뚝뚝한 시모츠지 상은 플레인에 잼 한 방울 넣어주지 않았다) 점차 그 맛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큰 스푼으로 요거트를 퍼먹고 잠을 잤고, 그 다음 날에도 샤워를 하고 요거트를 먹고 잠을 자고 그 다음 날에도 샤워를 하고 요거트를 먹고 잠을 잤다.

 

그러던 중 우리는 목사님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모츠지 상은 원래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사람이 무뚝뚝한 성격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집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이후로 집 정리를 할 마음 상태가 아니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사람의 집은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한다, 이 말을 어디선가 읽고 굉장히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날 저녁, 시모츠지 상의 집 청소를 했다. 동생들은 여전히 정리정돈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정리를 해주자고 했다. 한국 청년들이 하는 그 정리정돈이 일본인에게 눈에 들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원래 치우던 대로 치우라고 했다. 그 정도의 수위로 정리를 한다면, 아마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최소한 정리를 했다는 개념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거슬리지는 않겠지, 이런 계산이었다.

보통 시모츠지 상은 하루나 이틀을 제외하곤 우리보다 늦게 들어왔다. 그 날 시모츠지 상은 집이 정돈된 것을 알아차린 눈빛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샤워를 하고 플레인 요거트를 먹었다. 시모츠지 상은 팝콘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우리는 팝콘을 먹으며 티비로 스마스마를 보며 웃었다.

 

우리가 헤어지기 몇 날 전, 나는 시모츠지 상에게 삿포로의 전차가 타고 싶다,고 말했다. 시모츠지 상은 들은 체 만 체 했다. 나는 집요하게 타고 싶다, 타고 싶다, 전차 타고 싶다, 라고 했다.

시모츠지 상은 또 해괴한 웃음을 지으며, 전차가 타고 싶어, 라니, 하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는 시모츠지 상의 혼잣말이나 해괴한 웃음이 익숙하고 좋았다. 같은 팀 동생들은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어했으나 나는 고집을 피웠다. 일본을 네 번이나 왔는데 전차를 한 번도 타지 못하고 돌아가면 기약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례란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나는 네 명을 압도하고 (진실은 네 명이 이 작은 자를 섬겨준 것이리라) 다 함께 전차를 타러 가는 데에 동의를 얻었다. 우리는 한 작은 마을에서 전차를 탔다. 시모츠지 상은 타지 않았다.

나는 이 차를 몰고 종점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라며 혼자 남아 전차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철없는 우리는 시모츠지 상이 이대로 집에 가는 기행을 벌이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전차 안의 낯선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전차는 작고 조용했다.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전차는 덜컹덜컹 달렸다. 창 밖으로 불 꺼진 작은 집들 사이로 아직도 영업 중인 라면 가게가 김을 밖으로 수북이 내뱉는 정겨운 풍경이 보였다. 그렇게 조용한 마을을 네 정거장 정도 지나자, 커다란 전광판과 함께 삿포로의 시내로 들어섰다. 갑자기 들어선 삿포로의 도심에 우리는 놀라서 거대한 빌딩과 차량들, 많은 사람의 행렬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시모츠지 상이 차를 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전차를 따라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감동적인 일화를 우리는 다른 그룹의 팀원들에게 자랑했다. 한 팀원은 처음부터 자기들이 홈스테이하는 집이, 전통 일본 료칸처럼 다다미 방이 깔려 있고, 모든 것이 너무 정갈하고 훌륭하며 저녁마다 케이크와 과일로 대접을 받는다고 자랑했던 녀석이었다. 집은 너무 좋지만, 살다 보니 방 안에 도깨비 인형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으스스하고 꺼림칙했었다고, 자기도 환경이 어려워도 시모츠지 상 집에 같이 살면서 부대끼고 싶다고 고백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좁은 집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뻐근하게 자고 있던 터였으므로 극구 부인했다. 커다란 료칸 집이 이제는 부럽지 않았다.

 

우리가 삿포로, 일본 땅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 네명은 시모츠지 상과 함께 일본 온천에 갔다.

굴뚝에 라고 히라가나로 적혀 있는 커다란 곳이었다. 시모츠지 상의 등을 밀어주고 조용히 노천 탕에 앉아서 밤하늘의 구름을 보며 눈을 맞았다. 온천이 끝나고 자판기를 찾아 애플 주스를 마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완벽한 밤이었다. 그 온천은 집으로부터 차로 4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시모츠지 상에게 감사하다고, 피곤하겠다고 말했다. 시모츠지 상은 무뚝뚝하게 괜찮다고 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도로 곳곳에 눈더미가 이제는 머리 높이 만큼 쌓여 있었다. 한 시간 여를 주행한 끝에 우리는 나카노시마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지, 집으로 가는 길목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눈이 쌓여 길목에 눈벽을 만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나, 어리둥절했다. 내려서 걸어가야 되겠군. 우리는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 때 한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시모츠지 상은 말했다.

 

돌파해볼까

 

! 소리와 함께 우리의 차는 눈벽을 부수고 진입로를 만들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차 안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시모츠지 상은 너무 시끄러워~ 네 놈들은 항상 너무 시끄러워~”라며 귀를 막았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웃었다. 삿포로의 밤이 떠나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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