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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친숙하고 낯설은 언어와 나의 밀애에 대한 폭로

jo_nghyuk 2009. 1. 25. 23:38

어렸을 적부터 언어는 나에게 장난감같은 유희의 대상이었다. 모든 이에게 놀이기구가 친숙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그것에 탑승시켰을 때는 엄청난 낯설음이 체험되어지며 또 그 체험을 즐기는 것처럼, 나또한 친숙한 언어로부터 낯섦을 체험하며 은밀히 즐거워하며 살아왔다. 세살 무렵부터 내가 언어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고 부모님은 일찍이 알려준 적이 있다. 언어는 참으로 큐빅과도 같아 그것을 끼릭끼릭 돌리고 비틀어 조합하다 보면, 참으로 신기한 모양을 취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큐빅을 정말 못 하는데, 큐빅은 언제나 한 개의 종착역만을 목적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나는 멀미를 느낀다. 하나의 목적점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대단한 억압감과 강압을 수반하는 까닭이다. (지금 브라운관 속에선 우주전쟁의 트라이포트 괴생명체가가 산 위에 등장하였다. 이례적인 모양을 발견한 군중 모두가 경악하고 있다. 최초의 발견자는 톰 크루즈의 가족이었다.) 나는 내 언어의 최초 발견자이다. 나는 경악할 언어를 방출하고 싶고 그거면 충분하다. 굳이 사람들을 전율시키지 않아도 된다. 언어로 뜨악할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그것이 올바른 광대역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충분하다.

 

어린 시절부터 글자들 (자음 + 모음) 은 나에게 어떤 친숙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현상을 일으켰다. 단어를 보면 그 단어가 언니나 삼촌이 흥얼거리는 노래 소절처럼 친근한 음파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언어는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 자체가 소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되었다. 언어는 원래 소리와 일체를 이루고 있지만, 인간의 기관이 나누어져 있고 우리로 인해 그 기능들이 각자의 영역에 한정되어져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 혹은 눈 앞에서 언어는 글로 미분되어졌고, 영혼 속에서, 귀 앞에서의 언어는 소리로 분절되어졌다고 생각한다. 제프 버클리가 언급했듯 언어는 고체같이 정형의 형질을 이루고 반면 소리는 어둠과도 같은 원형 그 자체라는 이론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동시에 내가 보기엔 언어는 소리와 나뉘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한동안 랩을 하면서 고등학교 이전부터 대학교까지의 7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정말 소리를 내고 싶었고 그 목소리가 작을 지라도 나는 내 소리라는 것을 내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내 음파, 내 고유 음역과 내 주파수 안에서 나는 음의 파동의 굴곡을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변형하고 쪼개고 이어붙이고 원래 내 것이 아닌 언어를 잠시 내 것으로 임의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브라운관에서는 우주전쟁이 상영중인데 아버지 톰 크루즈와 아들이 잠시 서로의 일을 위해 헤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왜냐면 우리가 약속한 언어의 굴곡에 대한 패턴은 종종 우리를 가두어버리기 때문이다. 언어의 리듬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 안에 그것을 정형화하는 순간 우리는 언어의 다른 모든 리듬들을 잃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패턴화는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종종 동시에 더 먼 것과 더 광활한 것에 대한 탐구의 가능성을 빼앗아간다.

 

, 그래서 그대의 요지는 무엇인가. 나는 글을 쓰는 이가 되고 싶다. 글을 다루는 이가 되고 싶다. 오랜 시간을 허공을 치면서 살았지만, 평생 글을 쓰는 것이 내 직업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글을 쓰지 않던 시절에도 수없이 구스 반산트 영화 속의 글재주있는 흑인 청년 자말을 보며 떨곤 했었다.

젊은이여,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에서 한 일본인 청년이 도모다찌에게 보내는 서신 속에 등장한 쇼펜하우어라는 철인을 만나기 시작한 뒤부터,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감정을 기막히게 연속된 몇 번의 실연들을 통해 체험한 후부터, 어리숙한 각운을 붙여가며 완성한 랩 가사를 발화하며 사회 비판을 나름대로 시도한 미숙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니 정말 본질적으로는 세살 때 브라운관에서 방출되어지는 전격 Z 작전의 낯선 이국문자 Z제트_를 공책 위에 타이포그라피로 환유시키던 시점부터 열망. 열망. 열망. 열망. 열망. 씨름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여, 어떻게 살 것인가. 젊은 야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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