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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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안 외롭고 안 높고 안 쓸쓸한

jo_nghyuk 2012. 10. 12. 00:13


아이폰을 산 이후 2년 여가 넘게 겪는 다소 우스꽝스런 증후군이 둘 있다. 하나는 실제로 있지 않은 진동을 바지 속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문자가 오지 않았는데 액정이 켜진 것처럼 느껴져서 액정을 쳐다보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집중되어 일어나지 않고 파편화된 멀티-태스킹의 분화된 감각으로서 우리의 의식을 분열시킨다. 어쩌면 이 분화된 집중의 에너지가 약한 탓에 착란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지하철의 사람들은 그 작은 스마트폰 안에 몸 전체가 들어갈 듯한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는데 이는 집중보다는 권태를 흠뻑 머금은 피로에서 도망치는 현대인의 유일한 수단이 되곤 한다. 
나는 오늘 비슷한 경험을 했다. 책상 위에 놓아둔 액정에서 알림이 뜨는 것 같아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액정에 비친 나무의 가을 잎새가 떨어지는 움직임이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다른 전자기기와 달리 현대인의 몸에서 추가된 제 2의 지체branch란 표현을 한 적이 있다. 
현대인에게 모바일은 증식된 신체로서, 위성처럼 떨어져, 그러나 붙어서 존재한다. 현대인들은 야생의 작은 동물들처럼 휴대폰의 진동과 알림음에 하던 일을 멈추고 깜짝 깜짝 뒤를 돌아본다. 

우리는 이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용건으로 도입하는  텍스트 메시징에 익숙하다. 오랫만에 연락하는 이에게도, 순전히 용무를 먼저 적었다간 미안한 마음에 아차, 인사말을 앞에 첨부하는 야릇한 습관이 어느덧 들어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어깨를 두드리지 않아도, 곧바로 나의 용건은 그의 바지춤을, 테이블 위를, 가방 속을 뒤흔드는 물리적 에너지로 변환되어 전달된다.  재미있는 것은, 반응의 시간은 이제 상당한 자율성을 띄고 짧거나 길게, 혹은 무응답. 가운데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보내는 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적은 메시징이 강의실의 집중된 고요함을 깨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채플 중에 메시징을 받으면 참으로 당황스럽다. 에어플레인 모드로 전환한 뒤 심지어 누군가는 나에게 왜 답장을 안하냐는 면박을 오히려 주기도.)

나는 액정에 비친 잎새의 떨어지는 "움직임"에 놀란 것이지, 잎새가 떨어졌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된 것이다. 모두가 내용보다는 전달하는 "알림" 소리에 놀라는 그런 시대.  현대인이 피로한 것은 이 알림 때문이다. 페이스북을 자주 확인하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런데 왜 자꾸 우리는 "알림"을 알고 싶어하고, 자꾸만 피곤해지는가. 

그리고 나는 대체 휴대폰 액정에 비친 낙하하는 나뭇잎을 보고 어떻게 디지털적인 0(없음)과 1(있음)의 점멸의 신호만을 감지하는 것이냐. 이는 감각의 세분화는 커녕 모든 감각을 하나의 알림센터에서 확인하는 있음/없음을 향한 지나친 명료화는 아니냐. 
현대인들은 명확한 감각의 소유를 위해 서두른다. "깊은 심심함의 권태"는 이 피로사회 속에서 가장 심각한 연옥의 상태이다. 모두들은 1을 향한 끝없이 채움을 바라는 0의 심연에 사는 "텅 빈 사람들"이다. 

모든 대화는 이제 하나의 진동으로, 알림음으로 소급된다. 현대인들에게 이제 감각의 시초는 놀람이 된다. 우리는 놀란 상태로 시작하고, 하루종일 놀람에 지치고, 침대 옆에 놀람을 두고, 잠들기 전까지 놀란다. 현대인들에게 놀람은 0에서 1로 가는 경험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1로 채워지는 순간 다시 0의 목마름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정보와 놀람의 바다 속에서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더해간다. 

날씨는 겨울이다. 사람들은 달력이 가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을을 가늠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어느순간' 변한 잎새의 색깔, 사람들의 외투의 점유율, 캐스터의 계절의 바뀜에 대한 선언, 1에서 0으로 바뀌는 나뭇잎들. 잎새는 언제나 서서히 바뀜을 느낀다, 가 아니라 어느새, 바뀌어 있는것이 발견되어질 따름이고, 그만큼 우리들은 외부의 여러 감각들의 색채에 대해, 스펙트럼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둔감해지는데 피로는 더하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감각으로 계속해서 놀라는 사람은 둔감하지만 피로하다. 아이폰을 서랍에 넣어두고 책 한 권을 들고 숲에 들어가고 싶은 가을. 너무 안 외롭고 안 높고 안 쓸쓸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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