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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jo_nghyuk 2012. 11. 17. 17:47

만일 여성이 글을 썼다면 그녀는 공동의 방에서 써야만 했을 것입니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았지요. 그곳에서 시나 희곡을 쓰는 것보다는 산문과 픽션을 쓰는 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집중력이 덜 요구되니까요. 제인 오스틴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런 환경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조카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숙모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숙모님에게는 종종 찾아갈 만한 독립된 서재가 없었고, 또 숙모님이 쓴 작품의 대부분은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으며 쓰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수성은 공동 거실의 영향을 받아 훈련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이 그녀에게 인상을 남겼고, 개인들의 관계가 항상 그녀의 눈 앞에 있었지요.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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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 제인 오스틴의 성격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녀의 재능과 그녀의 상황은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제인 에어"를 펼쳐서 "오만과 편견" 앞에 놓으며 과연 그것이 샬럿 브론테에게도 해당될까 나는 의심스러웠지요. 

이 여성은 제인 오스틴보다 훨씬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오만과 편견" 옆에 이 책을 내려놓으며 계속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것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그 안의 경련과 분노를 주목한다면, 그녀가 결코 자신의 재능을 흠 없이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의 책들은 불구가 되고 비틀릴 것입니다. 그녀는 고요히 써야 할 곳에서 분노에 싸여 쓸 것이고, 현명하게 써야 할 곳에서 어리석게 쓸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등장인물에 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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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들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순전한 가부장제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그런 비판에 직면하여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이 본 그대로의 사물을 고집하는 일은 대단한 재능과 성실성을 요구했겠지요. 그 일을 해낸 것은 오직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성처럼 쓰지 않고 여성이 쓰듯이 썼습니다. "...여성 소설가들은 자신의 성의 한계를 용감하게 인정함으로써 탁월한 경지에 이르기를 열망할 수 있다." 이 말은 문제의 핵심을 단적으로 표현합니다. 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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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지가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의 의미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융화가 일어날 때라야 마음은 온전히 풍부해지고 제 기능을 모두 사용하게 됩니다. 아마도 순전히 남성적인 마음은 순전히 여성적인 마음과 마찬가지로 창조력을 잃을 것입니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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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쓸 첫 번째 문장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의식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쓰인 것은 비옥해질 수 없습니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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