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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 철학 논술 <광기에도 의미가 있는가?>

jo_nghyuk 2009. 1. 31. 02:30
병리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광기는 항상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어보면 모든 사회에서 광기는 사회구조를 와해시킬지도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따라서 위법으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철학자들은 광기를 이성과 대치되는 부정적인 것, 수많은 오류와 환상을 야기하고 진리를 왜곡하여 인간을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비난하였다. 다양한 문화그룹의 정신건강을 연구한 정신분석학자와 문화인류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광기를 주어진 삶의 규범과 비교해서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 가까이하기 싫고 내게서 멀어지길 바라는 악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지탄하는 광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그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 내 안에 존재하지만 인정할 수 없는 또 다른 나이다. 우리 안에 이상하고 괴짜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내가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것은 완벽하고 이성적인 모습이다. 가끔 우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한 행동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놀라움과 공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을 이성으로 억압하게 된다.
내 안의 광기를 잊는 방법으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것은 광인을 대표할 만한 자를 선정하여 그에게 나의 모든 불안과 공포를 전이하는 것이다. "저 사람 미친 사람이다"라는 주장의 저변에는 "나는 정상인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정상적이고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에 20세기의 학자들은 회의를 표시한다. 롤랑 바르트는 "광기는 병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변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광기는 병인가 다름인가? 푸코는 정신병원제도는 광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들이 정상이 되기를 바라도록 강요하며, 그렇지 못한 광인들에게 죄의식과 열등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고차원적인 억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광기의 문제와 관련해서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광인이므로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광기일 것이다. 이성이란 광기의 또 다른 회전이다." 유사한 관점에서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가역적 관계로 인해 모든 광기에 이성이 있고 모든 이성에 광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광기란 생 그 자체이며 인간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아 인간의 악과 약함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광기를 의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강함과 약함 모두를 이해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 삶 속에서 광기를 맘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거의 갖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광기와 세상의 광기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더욱 현명한 삶을 구축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지혜는 광기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대한 이해부터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성이 고전철학이 자신에게 부여한 절대적이고 완벽한 권위를 벗어던지고 보다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즉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게 될 때 그것은 인간이 오랫동안 부정하고 숨기고 싶어했던 인간의 심연, 즉 광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 바칼로레아 논술 철학이다. 그러나, 이해도, 용인도 되지 않는 것은 마지막 부분이다. "진정한 지혜는 광기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이것은 더 높은 지혜의 영역을 단지 미지의 영역이라는 이유만으로 광기에게 너무 성급하게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물론 광기를 토양으로 뛰어난 지혜와 빛나는 재능이 발현된다는 것은 굳이 푸코가 아니더라도 이미 고대의 이성중시학자 플라톤도 인정한 사실이다. 이성이 유연성을 갖추고 재정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파스칼은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 무한히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그 마지막 단계를 다른 어떤 것 (책에서 주장하듯 이를테면 광기.)을 통해 획득되어 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  
이성 너머에는 책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를테면 "심연"이 있다. 
광기는 인간이 그 "심연", 무한정성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어둠에 직면할 때 발생하는 인간의 조악한 발작이자 폭발이다. 그러므로 광기는 지혜나 재능의 도화선이지, 원천은 아니다. 
현대는 광기의 옹호를 넘어서 예찬에 가까워지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경솔한 트레이드(맞바꿈)를 좋아하는 인간의 파우스트적 본성이 현대에서도 맹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이 광기의 예찬을 회전시켜 다른 편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의 조야함을 격찬하고 있는 꼴이라는 것을 발견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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