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일상 속에서의 수련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일상 속에서의 수련

jo_nghyuk 2013. 1. 5. 10:49
참 자유는 내가 그것을 붙들고 고집하지 않을 때 주어집니다. 내가 집착하는 순간 나는 자유가 아니라 구속을 체험합니다. 중독된 의존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중독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도 참된 자유를 원하지만 우리는 영혼은 곧 육신입니다. 육신은 여전히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묵상해보았습니다. 회개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죄를 이길 수 없고 도리어 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임을 자복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위로부터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일상에서 매일매일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죄에 대한 중독의 의존성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유의 의존성으로 돌이키게 해달라는 마음으로서의 열매가 아닐까요?
이 열매는 내가 맺는다고 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집스러운 자아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선포하는 찬양을 통해서, 영과 혼을 분리시키는 날카로운 말씀을 통해서, 호흡과 같이 모든 강박적 생각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관상 등을 통해 수련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이 험난하고 혼잡한 세상 "중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영성 수련이라는 생각을 저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 문제는 부딪히지 않지만, 해결은 할 수 없지요. 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익사하지 않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것은 그러므로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예민한 영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관상 활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단히 성경을 상고하고 내 안에 말씀이 살아 생동하게 해야 하고,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에 내가 젖어 들게 해야 하고, 찬양으로 능력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성을 부단히 성실하게 연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려면, 비둘기와 같은 순결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순결함이 먼저요, 다음으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로부터의 지혜를 구했으면,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지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실한 지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성을 돌보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해야 하고, 은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감성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적당함"을 훈련하는 일일 것입니다. 반대편으로 내달리는 절제가 아니라, 온건하고 온전하게 사용하는 아름다운 정직이 더 필요한 시대일 것입니다. 

저는 영성 수련에 대해 말하였지만 사실 그것이 동떨어진 수련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경험 가운데 스스로를 개방시키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신중함과 근신함을 유지하는 스스로의 연약의 한계를 아는 행동들을 하는 것, 자신이 느끼는 것들을 바라보고, 손잡아 주고, 훈계해주고, 때릴 줄도 아는 것, 그러나 질식시키지는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더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하는 것, 이 모든 일상 안에서의 근면함이 우리를 성숙한 열매가 맺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할 것은 이렇게 우리가 노력하는 일반 은총 위에 반드시 위로부터 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서의 특별 은총이 없어서는 모두 허망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3 sisters brown cafe, Amsterdam, 2009 가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