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There are two colors in my head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There are two colors in my head

jo_nghyuk 2013. 2. 7. 03:15
나는 너무도 혼란스럽다. 내 안에는 두 개의 대립각이 전부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대립각이란 것이 존재한다. 이 사람의 이것은 저사람에게는 타협의 여지없는 치명적인 이론이다. 저사람의 저것은 이사람에게는 너무나 꽉 막힌 갑갑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둘을 전부 경험해보면서, 위험과 안정 사이를 소용돌이치며 나선형으로 오가면서, 나는 너무나 괴로워 울고 싶은 심정이다. 위험을 감수하라, 그러나 위험은 너를 잃어버리는 파멸로 이끈다. 안정을 추구하라, 그러나 안정은 너를 질식시키고 타자를 배제한다. 
위험을 감수하다 나는 어느새, 안정으로 빗장을 걸고 지켜야 할 때를 알게 된다. 안정을 추구하다 나는 어느새, 빗장을 풀고 회오리처럼 풀려 나가야 할 때를 알게 된다.  

나는 울고 싶다. 

나는 모르겠다. 

다만 빗장을 풀고, 매고의 권한은 내게 없다. 
그리고 빗장을 매고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빗장을 풀고 사는 이가 있다. 어쩌면 바울이 말한 대로 자유자와 종으로 주를 섬기는 이들인가 보다. 바울은 그러한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러한 모양으로 자신을 재형성한다. 양 간극의 로프반동만큼이나 이 과정은 치열하다. 자유자 앞에서 자유를 누리며 자신을 풀어헤치다가 다시 몸을 쳐 복종하며 그는 돌아와야 할 숙명에 놓여져 있다. 종 된 이 앞에서 근신을 하며 자신을 조이다가 다시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며 풀어야 하는 용기를 내야 하는 숙명에도 그는 놓여져 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은혜의 리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야말로 2차원적 사고였던 것이다. 실은, 이 양극의 리듬은 타자를 위한 것이다. 자유자 앞에서 나는 자유자가 되어야 하고, 종 앞에서 나는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에큐매니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나는 매우 작은 달팽이 같아서
내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이 매우 눈물겹고
용기를 내어 자유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를 내던지는 것이 매우 두렵다. 

보호가 없이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이 없이는,
나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을 수도, 이 미친 달음질을 멈출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미친 괴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울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회칠한 무덤이다. 
나는 은혜가 아니면, 숨 쉴 자격도 없는 쳐죽일 괴수이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곤고한 자로다. 

그리고 여기까지 은혜가 미친다. 
이 깊은 지옥의 바닥까지 은혜가 들어와 차고 넘치고 이 한없이 한심한 연약의 수렁까지 사랑이 들어와 가득 채운다. 내 가장 깊은 모든 곳까지 자비가 들어와 만족시킨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달팽이일 뿐이고
주는 가장 큰 회오리 광풍이며 동시에 봄의 산들바람이다. 

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바라고, 참고, 이기고 사랑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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