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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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Kein Philosophenweg.

jo_nghyuk 2014. 4. 22. 17:20


현대인, 특별히 도시인에게 사유가 결핍된 원인은 사유할 공간이 없어서이다. 자연의 부재이기도 하고, 비언어적인 감각을 배양할 장소의 부재이기도 하며, 세계 안의 오솔길을 단독자로서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기만의 방은 있을지 몰라도, 자기만의 넓은 장소는 없다. 모든 공원과 숲은 사람들로 우글거린다. 너에겐 자연의 움직임보다 온갖 기계들의, 기계적인 지나친 움직임들이 부딪히는 그곳이 공간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공간이라 할 수 없다. 그곳에서 너는 모든 타자들을 기계적인 비존재로 인식한다. 이방인은 너에게 생명으로 느껴지지 않고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세계 밖' 존재로 여겨진다. 너는 타자들을 그곳으로 몰아낸다. 너조차도 철저히 생명의 리듬이 아니라 기계의 리듬에 프로그램되었으며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처럼 현대의 무성Nichtige의 세력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기 때문이다.
타자도, 자연도, 세계도 생명없는 기계적 리듬으로 가득하다. 그 리듬으로 가득한 곳을 우리는 메트로폴리탄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도시를 닮아갈 수록 인간은 작은 반도체 칩처럼 그곳에 박힌다. 하드웨어들처럼 박힌 빌딩들, 온갖 전자 신호로 창궐한 도시, 자연을 도시 밖으로 몰아낸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생명의 무화를 체험하고 있다. 물소리, 새소리, 서걱거리는 나뭇잎 소리, 바람소리가 아니라 온갖 기계화된 음들의 해역 속에 인간은 표류한다. 사실 거기엔 너라고 할만한 것이 없고, 자기만의 방만을 갈구하는 불쌍한 전자신호만이 있다. 전자기장 안에서 인간은 무력하게 철저히 우연적이고 가변적이고 불확실한 역학 속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며 지쳐간다. 세계 안에, 관계 안에, 열린 고독자로서 세계'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닫힌 방으로서 세계'로부터' 존재하는 자아는 텅 비어 있고, 세계와 '함께'가 아니라 세계에 '귀속된' 개인은 무력하고 철저히 기계화된다. 이러한 곳에서 무슨 사유를 하겠는가? 내가 가진 매뉴얼은 생명을 위한 매뉴얼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일 뿐이다. 우리는 온통 나를 보호하고 나를 지키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 개인적 죄가 아니라 구조적 죄로 또한 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이미 기계화되고, 전자화되어 생동성을 잃고, 무성에 가까운 생을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인은 세계'에로' 향하는 자신의 단독자로서의 정초지점Grund 자체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자꾸만 세계'로부터' 방문을 걸어잠기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호받고 싶은 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관계적인 동시에 독립적이어야 하는 인간은 균형추를 상실한 나머지 방문을 걸어잠궈도 우울할 뿐이다. 방 안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방 문을 열면 혼돈이 창궐하고 있고, 문을 닫으면 텅 빔을 느낀다. 이것은 현대인의 존재론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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