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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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vulnérabilité d'amour

jo_nghyuk 2019. 3. 12. 00:23

프랑스어가 중급 정도 되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제랄드 메이가 사람들이 사랑을 피하고 효율성을 택하는 이유를 사랑이 수반하는 vulnerability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본다. 내가 벌거벗겨지고, 연약함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랑. 사랑은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해 십자가 위에서 뜨겁게 수치스러워지셨다. 

한 교인이 일전에 나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초라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이 맥락이 아버지를 빗대어 말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말을 아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니오, 저는 초라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초라한 곳으로 이끕니다. 저는 그리스도가 지금 어디에 계신가가 더 중요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사랑하다 초라해져 버린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다. 장애우를 섬기다가 발가락이 짓물린 당신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할 때, 그 좁은 길 혼자서 가시덤불을 맨손으로 치우며 가신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존경은 거리를 두는 언어이지만 사랑은 거리를 좁히는 언어이다. 나에게는 존경할 사람보다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한쪽 눈이 실명 가까이 되어 장애인 판정을 받던 날, 때가 많이 탄 하얀 트럭 안에서 당신은 내게 말했다. 이전에는 장애인의 친구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장애인이 직접 되었으니 얼마나 더 그들과 가까워졌겠느냐고. 아버지의 기쁨은 나에게 낯설었다. 당신은 언제나 몸의 망가짐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흔적이라고 표현했었다. 편안한 길 말고, 사랑의 험악한 길을 내게 다오. 십자가를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그 가시밭길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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