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다 부어서

지인과 카페에서 이야기하다가 무심코 책상을 스윽 쓰다듬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커피 잔을 감싸쥐는 습관은 언제부터였을까? 잔 자체의 온도가 아니라, 뜨거운 무엇을 쥐고 있다는 데서 나는 묘한 위안을 얻는다. 나의 유년기는 서러운 겨울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차디찬 방바닥 위의 얼어붙은 개구리처럼 꼼짝을 못하고 수일을 버티다가, 횡단보도 건너 주유소에 기름통을 들고 가서 반정도 담아오면 그것으로 며칠을 버티곤 했다. 하도 기름을 오랫동안 넣지 않아 보일러가 망가진 날에도 내 기억에 아버지는 낙천적이셨다. 어두운 날에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훗날 군에서 죽음 한발짝 옆에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서러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면, 이상하게 저편에서 꼭 설레임의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곤 했다. 사랑은 늘 저편에서 온다. 사랑받는 것에 낯설고 두려운 이 작은 것을 당신은 껴안는다. 나는 나에게 따스한 것들을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는데, 당신은 꼭 차갑게 죽은 것들에게 가서 그것들을 껴안는지.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기를 즐거워하는데, 당신은 죽은 것들 가운데 함께 거하고, 함께 죽고, 함께 되살아나는 길을 꼭 택하는지.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랑받을 때면, 나의 어디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가 꼭 확인하려던 그 습관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임을. 그저, 고마워요, 가난한 나를 사랑해주어서. 나도 당신이 참 좋아요. 이것을 당신은 듣기 원할 뿐이지요.

나의 주님, 여름의 뜨거움은 곧 비워질 것을 알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나로 하여금 더 순결하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