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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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핑거링

3월 24일 찬양인도 복기

jo_nghyuk 2019. 3. 25. 18:35

0. 주만 바라볼찌라  

1. 우물가의 여인처럼  

2. 보혈을 지나  

3. 슬픈 마음 있는 사람 Take the name of Jesus with you  

4. 사람을 보며 세상을  

5.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6. Du bist genug  

봉헌. 우물가의 여인처럼 + 주만 바라볼찌라 후렴


전체적인 찬양선곡의 테마는 헛된 것에서 눈을 돌려서 중보자 되시는 주님을 통해, 또 우리 삶에 거룩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통해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으로 채워지는 내용이었다.

0. 예배 선포 전 찬양을 아침이라 A키를 G키로 낮추어서 했는데, 후렴 전까지의 마디가 남성에게는 매우 낮은 음이어서 회중들이 따라부르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반대로 봉헌 찬양 때는 우물가의 여인처럼에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를 연결했는데, 여전히 원키인 A키는 후렴에서 매우 높았다. Ab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아무래도 준비과정에서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듯 싶다.

1. 헛된 것에서 눈을 돌려 주님만으로 채워달라는 메세지에서 성령의 도전이 있었다. 단순히 노래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전존재가 회개하여 주께로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부담이 있었으므로, 찬양을 지속하기보다 함께 기도의 순간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예배는 입술이 아니라 중심으로 드리는 것이기에, 회중과 함께 참된 회개의 고백과 부르짖음 이후에 다시 이 찬양을 고백할 때에 그 진실된 고백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2.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주제인데, 우리의 갈급함만으로,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마음 속 깊이 죄로 물든 우리가 참되게 주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이 아니고서는 주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거룩한 분"에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새롭게 하심의 은혜가 우리에게는 날마다 필요하며, 그 보혈의 은혜를 힘입어서만 참되게 나아갈 수 있다.

3. 템포에서도 그렇고, 전체적인 찬양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지점이다. "주의 보혈을 힘입어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우리의 어둠을 빛으로 바꾸시는 주 앞에 나아갑시다" 찬송가를 부를때면, 전체적으로 네박자 안에 박수를 다 넣는 것이 회중에게도 자연스럽고 힘이 된다. 영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힘을 받은 후에는 박수를 굳이 박자 안에 다 쪼개서 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찬양에 진실된 힘이 실리게 된다. 이때부터 회중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박자를 타거나 박수를 치고, 멜로디나 감탄도 다채로워진다. 성령께서 자유롭게 일하시기 시작하면, 인도자는 힘을 빼고 하나님과 회중 사이의 관계의 역동에 집중하며 찬양을 인도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찬양을 반복할 수도 있고, 다음 곡을 새롭게 넣거나 뺄 수도 있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4. 이제 이 찬양은 쥐어짜는 의지적 고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의 영의 고백이 된다. "사람을 볼 때는 만족함이 없었으나, 나의 하나님을 볼 때에 나는 참 만족을 누린다" 후렴은 어떤 고난의 바람이 불어도 "가시밭의 백합화와 같은 예수 향기를 날리게 하는" 도구가 될 뿐임을 고백하는 부분이다. 주 예수를 바라보게 될 때 고난이나 아픔은 나에게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사랑의 가시면류관이 된다. 환난이나 유혹도, 주님 한분을 바라보는 나의 진실된 고백 앞에서 오히려 주님께 가장 큰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기회로 탈바꿈한다. "동남풍아 불어라", 환난아 오너라, 시험아 오너라. 나는 너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유약하게 쓰러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붙잡고 너를 넘어가버릴 것이다. 이 고백을 함께 시작하며 찬양 중에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실되어서가 아니라, (나는 분명 1번의 우물가의 연인이었다) 예수의 보혈이 신자의 영을 거룩하게 씻어서 하나님에게 넘겨드릴때,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신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진실되고 거룩한 고백"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신자에게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주시며 임재하기 시작하신다. 찬양의 능력이 골리앗을 쓰러뜨린다(암스테르담, 2009).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경험은 하나님께 큰 영광의 기회가 되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이 되는 것만이 나에게 면류관이 된다. 나에게 다른 면류관은 없다.

5. 4번찬양과 5번찬양을 연결해서 불렀다. (윤주형 목사님 찬양인도 참조) 4번이 고백과 간증적 성격이라면 5번의 찬양은 선포와 계시적 성격을 띄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후렴에는 간구의 성격도 들어있다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성경에서 나타난 주의 엄청난 능력을 선포합니다.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오늘 나에게도 말씀하시고 임하셔서, 나의 삶을 전적으로 새롭게 바꾸어주소서. 

6. 이날은 독일어로만 이 찬양을 불렀다. Christus ist mein Lohn, ich bin ihm ganz ergeben. 이 고백은 마치 번제로 드려지는 제사와도 같다. 나에게 유일한 상급은 그리스도시니, 그에게 나는 완전히 헌납되었다. 이제 돌아설 길은 없으며, 주님만이 나에게 충분한 분이시다. 일본어 찬양의 고백은 "주님만이 나를 가득 채우십니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나는 그 번역을 더 선호한다. 결국 인간에게 가득 채워져야 하는 것은 주님 한분 외에는 없다. 독일어로 불러서 한국인 회중들이 다소 생소해한 측면도 있지만, 피피티에 한글가사를 함께 넣어서인지, 후렴에서 회중들이 고백하는 부분에 힘이 느껴졌다. 


스탠더드한 찬양콘티라면 1. 감사 2. 회개와 간구 3. 선포와 기쁨 4. 고백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날 그날에 맞게 틀이 조금씩 유연하게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라면 5곡을 하는 선에서 끝났을텐데, (사실 5번 찬양은 예비적인 성격으로 넣어둔 찬양이었다) 회중의 고백이 깊어지면서 더 깊은 찬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날이 어제와 같이 깊은 임재가 있지는 않다. 어떤 날은 회개의 기도를 주로 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마음들을 중보하다가 끝날 때도 있다. 그러나 예나 도시에도 기도회가 생기고, 기도가 조금씩 쌓이면서 전체적인 공동체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의 불이 커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찬양콘티를 복기함으로써, 나의 삶에 대한 돌아봄과 낮은 마음의 간구가 끊이지 않기를 기도한다. 


23. März, 2019. 목사님과 예나 금요성경공부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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