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4월 10일 저녁기도회 복기, 웃음의 현상학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10일 저녁기도회 복기, 웃음의 현상학

jo_nghyuk 2019. 4. 11. 02:53

암스테르담에서 2009년에 처음 접했던 찬양이었다. 그때 찬양인도자가 찬양을 하다가 그냥 웃어버리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웃음은 터져나오는 꽃과도 같다. 뿌리에서 힘을 얻은 줄기가 온 힘을 다해 파열하는 순간 웃음과 같은 꽃이 핀다. 사랑하는 연약한 제자가 좁은 길을 어떻게든 따라오려는 작은 몸부림만 봐도 정말 사는 보람이 있도록 기뻤다. 연약한 내가 주님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파열하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당신은 나를 질투하시는 분이시군요. 나의 1분 1초의 호흡도 질투하시는 분. 내가 제자를 보는 마음처럼 당신도 나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보시겠지요. 

저녁기도회에는 특별한 은혜가 있다. 경건한 전통에서 자란 나는 성령께서 정말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선교단체를 가고 나서,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가고 나서 나는 '내가 자유한' 것보다 '성령이 내 안에서 자유할' 때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나와 하나님의 자유가 함께 하는 순간이다. 나는 내 자유가 얼마나 큰지 몰라서 아브라함처럼 중간에 뻘짓을 한다. 그러나 나의 자유를 주께 사랑으로 드리면 그때 하나님과 나는 자유를 공유하는데 이 친밀한 자유의 깊이는 매우 내밀한 것이어서 말로 표현하려 하면 언어들이 터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담은 것들이 터져버리는 순간이 웃음이 현상하는 때이다. 

경건주의를 배우고, 오순절을 배운 나는, 십년여를 신학을 공부했고, 다시 성령의 자유 가운데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컨트롤은 주의 것이지만 영상에서의 킴 워커처럼 언제 터뜨려야 하고 언제 멈춰서야 하는지 더 잘 아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경건주의가 터져버리고, 오순절이 터져버리고, 신학이 터져버리고, 나 자신이 터져버리는 순간 하나님과 나는 둘이서 친밀하게 하하하하, 웃으며 깊고 은밀한 부부사이를 공유한다. 존재의 터져나옴, 존재의 개방이 웃음의 현상학의 의미이다.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사랑에 대하여 자신을 내어주고hingeben 자신을 포기할 때 둘은 웃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 나는 2004년 이후로 웃음의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 저에게 로렌스 형제와 같은 영성을 주세요.

너는 너이다. 나는 너를 로렌스 형제로 만들지 않았다. 너는 그에게서 배울 수는 있으나 그가 될 수는 없다. 너는 내 안에서 오로지 본연의 네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 나아오라. 내가 너를 너 되게 할 것이다. 더 크게 빚을 것이다. 

킴 워커, Happy day (Jesus Culture)

this is joy, this is joy, this is joy, this is joy의 spontaneous한 momentum, 이 솟아오르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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