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4월 12일 금요성경공부 복기, cool down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12일 금요성경공부 복기, cool down

jo_nghyuk 2019. 4. 13. 02:02

역설적으로 쿨링타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많이 날서 있었다. 그것도 조급증일 것이다. 그러나 생의 그래프에는 리듬이라는 것이 있어서 치고 올라가는 시간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차분하고 부드럽게 내려오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그 감각을 길러가는 것이 연륜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가열되는 쪽으로만 치닫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의와 교만의 도랑을 만나고 만다. 열정 자체가 의가 되는 것이다. 그건 그냥 생의 약동일 뿐이고, 선물일 뿐인데, 선물로 받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야말로 그릇이 작다는 반증 아닌가. 

부흥은 생각보다 내밀하고 소소한, 수면 밑에서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은혜와 생명의 리듬'이다. 기도의 자리를 칸트처럼 지키는 것, 말씀 앞에 나아가는 패턴을 매일 수놓는 것, 찬양을 즐겁고 습관을 따라 하는 것. 습관을 따라 하는 예수의 기도처럼. 그래서 부흥은 개개인의 영적 분별력이 회복되는 매일의 순간이다. 자신의 잘못된 패러다임과 자신의 편협함을 부수고, 자신의 거짓된 안정감과 자신의 작은 자아에서부터 해방되는 이 냉정함도 부흥이다. 그렇다면 부흥은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냉철한 무엇이지 않겠는가. 떠날 것을 즉시 떠나고, 단호할 것에 단순하게 단호하고, 담대할 것에 거침이 없이 담대하며, 온유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중지하고 사랑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부흥이다. 

부흥은 거룩하고 위대한 한순간이 아니라, 거룩한 것이 일정함을 이루며 패턴이 되고, 리듬이 되며, 습관처럼 즐겁게 되는 것이다. 거룩이 일상이 되는 기적. 거룩을 즐거워하게 되는 기적.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따르는 것을 기뻐하게 되는 기적. 

그래서 쿨다운하자. 열정만으로 밀고 가려는 부담을 버리자. 늘 그랬듯이 나는 나의 리듬을 가지고 가자. 주께서 시작하신 일을 주께서 지금도 진행하고 계시니 보이지 않는다고 재촉하지 말고 수면 밑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주님을 믿고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조용하고, 선선한 여름저녁처럼 그렇게 가자. 주말에는 좀 잔잔해지자. 나무늘보는 나무늘보의 삶이 있고, 토끼는 토끼의 삶이 있으며, 코끼리는 코끼리의 삶이 있고, 표범은 표범의 삶이 있다. 천국은 서로의 약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격려하며 서로의 약함을 가리워주는 곳이다. 정답을 외치려는 자, 그 조급함을 내려놓으라. 모든 일을 주께서 지금 수면 밑에서 진행하고 계시니. 

토끼 감독과 나무늘보의 케미스트리를 보라. (사실은 토끼만 괴롭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