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4월 27일 기도회 복기, 빛과, 윤곽과 면, 그리고 색채의 레조넌스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27일 기도회 복기, 빛과, 윤곽과 면, 그리고 색채의 레조넌스

jo_nghyuk 2019. 4. 28. 05:28

나는 성령님이 참 좋다. 그 분은 내가 아는 이 중 가장 부드러운 성품을 가지셨고, 누구보다 정직하시다. 두려워하는 이에게 '무서워하지 마. 나는 네 편이야. 이기게 해줄게' 하시며,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아니야. 너는 참으로 견고하고 강해. 나는 너를 최상품으로 누구보다 귀하게 만들었단다'라고 일깨워 주신다. 

그를 만난 후로 내 삶은 완전히 변하였다. 냉소적이고 염세적이던 나는 웃음이 많은 헐렝이로 바뀌었고, 광기의 질주를 스스로도 멈치지 못하던 사람이 차분한 열정의 길로 다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어리석던 젊은이는 지혜로움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는 장년이 되었고, 억압적이던 심리의 역동은 자유함 가운데 기쁨을 향하여 개방되었다. 그는 내가 만든 염려로 가득한 삶의 정글을 '아니 대체 뭐가 문제야'라고 쿨하게 말씀하시며 손질하시더니 희락의 정원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그 정원에는 선악과가 아니라 생명의 실과로 가득하며, 선악과를 관리하는 한 주님만이 계시다.

안되는 것을 부여잡고 꾸역꾸역 사는 삶의 방향과, 조금 부족하게 그리고 공간감 있게 넉넉하게 사는 삶의 방향이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힘을 빼지 못해서이고, 사랑이 뭔지 아직 잘 몰라서이다. 사랑을 모르는 자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랑을 아는 자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랑하며, 높은 자존감을 선물로 얻는다. 

그를 깊게 경험할수록 자존감이 동동동동 올라간다. 자존감은 감정이 아닌 분별력이다. 내가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하게, 그리고 공교하게 지어졌는지 점점 분별되어지는게 자존감이다. 빛이신 그 분에게 가까이 갈수록 우리의 형상은 더욱 윤곽을 드러낸다. 윤곽은 면을 안고 있고, 면은 색채를 안고 있으며, 색채는 빛을 향한 반향Resonanz이다. 색채는 창조주를 향한 피조물의 사랑의 응답이다. 여러 음향들의 위치와 거리를 360° 권역 안에서 감지하는 그러한 순간 나는 기묘하게 직조되었다는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밑바닥에서 기어올라 왔고, 비존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만을 내 것으로 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색채를 그 분께로 반향하며 참된 나의 윤곽과 면과 색으로 현존할 것이다. 

반대로 어둠을 향할수록 윤곽이 점차 흐릿해지고 분별이 약해지며 길을 헤매기 시작한다. 그때 그는 말씀하신다: 아무리 두려워도 숨지는 말아라. 아무리 연약해도 숨지는 말아라. 아무리 죄가 있어도 숨지는 말아라. 그럼 너를 도와줄 수가 없다. 나는 너를 돕고 싶다. 너를 많이 사랑한다.

그분의 이름은 파라-클레이토스, 옆에서 돕는 이.

나를 창조주가 도와주신다. 나의 헬퍼는 창조주이시다. 이처럼 든든한 기적이 또 있을런지. 내가 나를 붙잡을수록 나는 어둠에 빠지고, 내가 그를 붙잡을수록 나는 나를 얻고 모든 것을 선물로 받는다. 사랑의 관계는 내어주고 선물받는 관계이다. 많이 내어주고 많이 받자. 다 드리고 그냥 다 받자. 

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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