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5월 1일 새벽 꿈, le calvaire a tout couvert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5월 1일 새벽 꿈, le calvaire a tout couvert

jo_nghyuk 2019. 5. 1. 10:32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나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갈라놓게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허물이 있었고 나는 정의를 외치며 그 허물을 폭로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가 나서 저마다 자기 방향으로 갈라졌다. 어쩌면 그게 내가 생각했던 정의였고, 율법이었던 듯 하다. 꿈 속에서 내가 가는 어디에나 사람들은 문제라는 것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드러내야 하는 어떤 것이라 생각했고, 한번도 그것을 고치지 못했다.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숨겨야 할 때가 있다.

분별력이라 하는 것은, 시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자신을 변환switch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태도변경의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유는 꿈으로 주님께서 나에게 강권하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오 사랑, 레비나스를 더욱 읽고 싶다). 

우리 모두는 허물을 안고 있다. 그것은 평신도나 지도자나, 직분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장년이나 청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너무도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보느라 자기 눈의 티끌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화살을 밖으로 쏘는 방법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bridgebuilder가 가운데 필요한 것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느니라 (잠 10:12),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στεγω라 하는 헬라어는 덮어주다, 가리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힐송의 calvary 찬양의 후렴구의 독어 번역보다, 프랑스어 번역이나 한국어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생각한다. Auf Golgatha ist es vollbracht라는 말은 주께서 골고다언덕에서 성취하신 언약을 강조한다면 Le calvaire a tout couvert라는 말은 갈보리의 보혈이 모든 것을 덮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번역은 갈보리 덮으시네로 되어 있다).

선교사님이 기도회 후에 나에게 '지금 광야에서 외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무엇과 싸우고 있는데, 무엇과 싸우는 지 더 명확히 하고, 칼을 갈아야 하네'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똑바로 안다. 나는 분쟁을 일으키는 마귀와 영적 전쟁 중이며, 최전방에 서서 피를 흘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힘이 부족하니 주께서 나를 새벽에 흔들어 깨우신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겨우겨우가 아니라 넉넉히, 이기 때문이다. 나를 넉넉히 이기게 하기 위해 나를 깨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의 길은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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