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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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4월 30일 수기, 시몽과 마탱 그리고 쟝

jo_nghyuk 2019. 5. 1. 11:21

화요일은 프랑스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세 시간이나 되지만 시계를 한번도 보지 않는 그야말로 수행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다. (재즈댄스 수업 중에는 체육관에 걸린 시계를 중간중간 무지하게 보았었다, 드로잉 수업을 들을 때는 한번도 시계를 안보고 스케치북에 몰두했었고).

선생은 일부러 대형서점이 아닌 개인서점에 프랑스어 책을 주문해놓았다. 구글지도로 서점을 찾으니 사랑하는 지인의 가게 옆이다. 교재를 사서 기분 좋게 지인의 카페에 가서 플랫 화이트를 주문하고, 갓 구운 빵을 먹고, 해를 쬐며 거리를 걷는다. 광장 옆의 기독교 서점에 들어가 렘브란트 삽화가 들어간 성서를 구매했다.

프랑스어 반 친구들은 지난 주보다 몇 센치 정도 더 가까워져 있었다. 방심을 해서 단어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모르는 동사가 꽤 나와서 당황했다. 과제는 착실하게 해야겠다고 반성을 한다. 

오늘 내 옆에 앉은 시몽은 그야말로 빌 에반스의 기생오라비 버전이라 할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녀석이다. 나는 시전도 할 수 없는 능청스러운 프랑스어를 내뱉는가 하면 내 텍스트북에 내가 알파벳 Y의 프랑스 발음 철자를 igrek이라 쓴 것을 보더니 후훗, 웃더니 k를 연필로 쓱쓱쓱 긋고 c라고 적어놓는다 (감히). 난 이놈의 첫 인상이 지난 주에는 매우 버터같이 느끼해서 별로였는데, 이상하게 정감이 가는 놈이다. 조용히 내 옆에 와서 활처럼 기지개를 쭉 피는 고양이처럼 자연스럽다. 나는 수업 중에 (아니 평소에도) 몸을 좀 자유롭게 움직이며 그 감각들을 즐거워하는 편인데, 이놈의 새끼가 아글쎄 나랑 똑같은 자세로 의자를 비스듬하게 띄워서 벽에 기대서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감각들이 타자 안에도 있는 것을 볼 때 경탄을 느낀다. 

그리고 지난 주에 대화 파트너였던 마탱과 또 파트너가 되었다. 이 친구는 시몽하고는 완전히 반대로, 선이 굵지만 여린 면이 있는 이를테면 흑연의 B와도 같은 그런 녀석이다 (말하자면 시몽은 선은 가늘지만 당돌한 고양이라면 마탱은 크고 순한 개랄까). 나는 친구 소개를 선생에게 하는 시간에 Il s'appelle Macron이라고 말해버렸다. president de france? 아니아니, 마크롱이아니라 마흐탱이라고 녀석이 친절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마탱은 함께 대화하다 보면 차분해지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 슐레에서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죄다 까먹어서 회생하려고 수업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업 중간중간 드리블을 치고 나가듯이, 녀석의 프랑스어 기억이 반짝반짝, 돌아오는지 대답을 썩 잘한다. 

아무튼 나는 나를 쟝, 으로 소개한다. 여권에 ch가 아니라 j를 적었어야 했다. 나는 english에 의해 '창'씨개명을 당한다. 재밌는 것은 jang도 쟝이고, jong도 대략 죵과 쟝과 졍 사이 어딘가의 constellation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냥 쟝, 이라고 우기는 중이다. 그렇다고 너희들이 내 풀네임 발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니. 마탱이 몇번 하다가 힘들어하니 이자벨르가 자기도 못하겠다고 웃는다. ichscheiße, 미안해 얘들아.

목소리가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쉬어버려서, 내 목에서 나오는 프랑스어가 여간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럴 때는 기타도 안 치게 된다. 즐겨 부르는 프랑스어 찬양도 할 수가 없다 (할 수야 있지만 내 관점에서 그건 색조를 가진 음들이 아니라 하나도 즐겁지 않다, 채도가 너무 낮다). 몽글몽글한 프랑스어를 발화하는 데에 성대의 컨디션이 매우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고, 높은 음을 못 올리니까 노래는 커녕 음역대가 높은 루피 같은 친구의 랩도 따라 부를 수가 없다. 팔로알토 정도로 낮은 것만 가능하다. 생각에 잠겨있지, 머리 속엔 조이스틱. 아름다운 목소리를 돌려다오.

수업 후 길가에서 딸기를 사서 지인의 가게에 간다. 함께 딸기를 먹으며 대화를 하고, 계단에 혼자 걸터 앉아 성경을 읽고, 삽화를 보고, 해를 쬔다. 왼쪽 뺨이 타는 것 같아 오른쪽 뺨을 돌려댄다. 집에 오니 아내가 왼쪽 얼굴이 왜 이렇게 검으냐며 간이 안좋은 것 아니냐고 묻지만 해를 쬐었다고는 말 못한다. 나는 해를 좋아하지만 아내는 검은 얼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오, 내 유년시절의 흰 얼굴도 돌려다오.

알자스에서. 얼굴 보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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