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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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5월 2일 수기, alors!

jo_nghyuk 2019. 5. 3. 00:41

기도회가 끝나고 집에 와서 잠이 들어버렸다.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어제는 시내에서 대대적인 벼룩시장이 있었는데, 이걸 보려고 옆 마을에서 옆 도시 옆 국가에서까지 오다니, 어머머 미쳤어. 아무튼 나는 인파가 몰리는 곳을 피해다니고 싶은 사람인데, 오랫만에 그 속에서 있다보니 한시간도 채 안되어서 오래된 아이폰처럼 갑자기 15프로 미만으로 방전되어 버렸다. 나는 사랑하는 지인의 가게 앞에 가서 계단에 걸터 앉아 프랑스어 듣기를 연습하고, 아주 잠깐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성령론을 전공하거나 성령에 대한 강의를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부드러운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비단결같은 미풍이 지나간 후에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오랫만에 듣는데, 단단한 음식처럼 입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부드러운 오후를 보내고 나면, 단단한 것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가 될 때도 있다. 나는 내 자녀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동시에, 녀석을 정직하고 단단한 심지를 가진 친구로 키우고 싶은 것이다. 

진지하게 그림에 대해서 다시 생각 중이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정말 생각보다 많이)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아 보여서이다. 그래서 하루에 잠깐의 시간을 내어 그리는 정도이지만, 렘브란트의 스케치처럼 그림을 그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림은 언어와 달리, 해석의 접근에 대한 방지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리와 창기에게 나아가셨는데, 나는 그 화해의 현실성을 잘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제자는 아침마다 묵상을 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vlog 채널에 그것을 업로드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손을 펼 것인가. 에 대한 질문들.

지도교수 설교번역을 반정도 끝내고 보난자에서 사온 원두로 아이스 아메라카노를 만들었다. 아내가 어디서 치킨 랩을 받아왔는지 그게 식탁 위에 놓여 있길래, 발코니에서 해를 쬐면서 커피와 함께 먹었다. 그냥 그게 다였지만 나는 해를 쬐는 것만으로도 très content해진다. 번역만 하루종일 하기보다, 커피도 마시고 해도 쬐고 그림도 그리고 가끔 생각나는 것들을 두들기는 삶에는 필수적인 당분같은 것이 들어있는 듯 하다. 성실한 일정 중간 중간에 낀 한량같은 라이프가 그야말로 숨을 쉬게 한다. 

아무리 불이 뜨거워도 공기가 충분하지 않으면 기름을 붓는다 해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달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멈춰서서 쉬기도 하는 존재이다. 수면 위를 운행하는 영이 운행betreiben 뿐 아니라 쉬었다ruht auf고 루터는 번역하였다. 그 영은 광포한 바람ruach elohim인 동시에 잔잔한 미풍이기도 해서, 만물을 감싸고 보호하고 있다. 암튼 나는 그 둘을 여전히 포괄하려고 생각 중이다. 

il fait du soleil et il est très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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