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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메세지와 꿈, 그리고 디스토션distortion

jo_nghyuk 2009. 3. 5. 15:14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그의 귀에다 대고 어떤 말을 한다 하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꿈을 꾸고 있으므로 나의 말은 그의 꿈 속에서 왜곡distortion되어져서 컬트적이든, 아니든, 플롯이 서사적narrative이든, 부조리극 형식이든 상관없이 그의 꿈 위주로(혹은 범주 안에서) –해독(혹은 암호cord)되어진다는 얘기다. 


내가 올바르게 메시지message를 전달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흔들어 깨우기. 촉각은 이런 때 청각보다 더욱 현실적realistic인 감각인 것이다. (실제로 꿈 속에서 크게 다친다거나 해도 우리가 그다지 큰 통각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그 사실의 근거가 되어준다. 촉각은, 외부outward에서 수행되어지는 감각인 까닭이다.)  흔들어 깨우지 않고서는, 그의 닫힌shut 기관들 (seeing, hearing-이 때 귀는 반쯤 닫혀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촉각touching- 촉각은 거의 꿈 속에 반입되어지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불을 두른 상태로 꿈에 출연한 적은 없을 것이다. 촉각과 시각이 매우 현실적인 감각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도마에게 내 손 못자국을 보고 만져라라고 말씀하심으로 들음으로(청각,hearing) 믿지 못하였음으로 현실적인 감각을 사용하여 보고 만지고 믿으라고 하신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때문에 온전하게 꿈 속에 있는 이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긴 하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방법인데, 유일하게 완전히 닫히지 않은 기관인 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매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변질distortion되기가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이의 플롯plot (혹은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면 외부로부터의 메시지는 그만큼 더 디스토션distortion이 걸려 꿈의 층위layer에 입혀지기 쉬운 개연성(위험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의 플롯plot에 지나친 위화감(이질감)을 주지 않으면서 꿈의 중심부에 진입하여 그의 플롯plot을 메시지의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꿈을 꾸는 이 (다른 말로 하면 꿈의 주인)와의 씨름wrestling이 되는 것이고, 메시지를 바르게 전달하여 그것을 온전히 꿈의 플롯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꿈의 주인자리 쟁탈 싸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의식이 센 사람의 꿈일수록, 그 쟁탈전은 더욱더 격렬한violent 싸움fight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접근하시는 방식way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awake 않는다. 우리의 자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비인격적으로 우리의 의지를 꺾거나 굴복시키시지 않는다. 그 분과 우리는 전혀 다른 차원level에 존재한다.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층위layer(꿈을 꾸는 이와 그를 깨우는 이에 비유할 수 있겠는데, 눈을 뜬 이와 눈을 감은 이의 차이, 온전하게 듣는 이와 불완전하게-그리고 때론 오히려 왜곡하여- 듣는 이의 차이, 온전히 아파하고 그러지 않는 이의 차이, 온전히 말하고 옹알옹알 잠꼬대 같은 말만 하는 이의 차이룰 들 수 있겠다. 현실 속에서 말이다. 꿈 속에서의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온전히 보고 있으며, 온전히 듣고 있고, 온전히 느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가지고 계신 이는 절대로 꿈 밖에서 이 멍청아 일어나하면서 우리를 발로 차 깨우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꿈 안으로 들어오신다. 그것이 이전에 말한 성육신incarnation과도 연결 개념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주님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자. 우리의 현실 속에 주님의 손과 발과 입과 눈이 마음껏 폭군처럼 휘두르고 있는가 아니면 세미하고 조용한 음성이 그나마 반쯤 열린 우리의 귀를 통해 충분히 왜곡distortion되어질 수 있는 개연성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순수pure하고 단순simple하게 우리에게 조그맣게 들려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극렬하게 그것을 우리의 꿈에 맞추어 왜곡하고 변해시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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