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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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오랑쥬 껍질 씹는 나그네 독자의 시름

jo_nghyuk 2009. 4. 19. 23:45

4 17일 지하철 택배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바로 편하게 지하철을 그대로 타고 길음역으로 오는 방법을 나는 선택했는데, (사실 나는 길음역을 통해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아무리 빠른 걸음으로 축지법을 써도 13.5분 정도가 걸리는 지하철역과 교회의 애매한 거리 때문이었다. 마을버스 두어 정거장은 거뜬히 먹어치울 거리.) 이 날은 이렇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역에서 교회로 오려면 현대 아파트 단지를 반드시 돌파해서 와야 하는데, 아파트 단지를 꽃들이 화관처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보행과 독서를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잠시 베르테르의 서신에서 눈을 떼어 꽃들 위에 어스름이 슬그머니 내려앉고 있는 현장을 포착하게 되었다. 아직은 책을 읽기에는 충분한 자연광이지 않은가, 민음사의 은근한 베이지 색 책 페이지가 어스름의 색에 맞추어 창백하게 변온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까 그 옛날 일본 에도 시대의 우끼요에 판화가들이 약간의 그늘짐을 판화를 보기에 최적의 조명상태로 예측설정해놓고 판화작업을 하던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자연광과 판화 종이의 어우러짐의 속성.

곧이어 가로등이 켜지자 서신 속의 발하임(베르테르가 찬양해 마지않는 평온의 도시)푸르스름한 자연광번뜩이는 가로등의 오렌지색 인조광이 투쟁하는 살벌한 전장으로 탈바꿈해버렸다.

(사실 가로등 밑에서 차분히 책을 읽고 싶은 이 누구 있겠는가.)

해서 나는 순식간에 오랑쥬 빛깔을 눈으로 씹어삼키며 시름하는 젊은 나그네가 되어버렸다.
자연광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 독자.
, 가모가와, 가모가와*



* 하이퍼링크_ 정지용 鴨川 kamokawa


* 하이퍼링크2_ 교토의 압천鴨川 kamokawa



그곳에 가면 이상하게 외로워만 지는 가모가와, 수박냄새 품어 오는 저녁 물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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