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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수련회 설교 1, 열왕기하 22:1-20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청년부 수련회 설교 1, 열왕기하 22:1-20

jo_nghyuk 2023. 4. 30. 01:37
열왕기하 22:1-20 (역대하 34)
이 성전을 고치라
1
 
(그림 1) 이 그림의 제목은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입니다. 이 소녀가 어떤 편지를 읽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물어보면 대개 사람들은 그다지 밝은 내용의 편지라고 추측하지 않습니다. 방 분위기도 어두워보이고 여성의 얼굴도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편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줄곧 드레스덴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검사하던 도중에 엑스레이를 통해 소녀 뒤의 벽에서 사람들이 어떤 그림의 흔적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림 2) 어떤 흔적처럼 보이십니까? 독일 사람들은 엄밀함을 추구하고 토론을 좋아합니다. 몇 년간 연구와 토론을 걸친 뒤에 사람들은 이 흔적이 베르메르가 그렸던 것인데 후대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물감으로 덮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물감이 베르메르가 쓰던 시대의 성분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복원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과정이 다음 그림입니다.
 
(그림 3) 소녀 뒤에 있던 벽 안에는 큐피트가 숨어 있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제 제가 다시 질문을 드리면, 소녀가 읽는 편지의 내용은 아마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소녀가 읽는 편지는 밝은 내용일까요, 어두운 내용일까요?
이제 모든 사람들은 소녀가 읽는 편지의 내용이 연애편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을 보니 방의 분위기가 환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저 큐피트 액자의 회복으로 베르메르 그림의 구도와 소실점 등도 제 자리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벽 안에 숨어 있던 큐피트를 찾아내니, 그림의 주제가 회복되고, 그림의 구도와 질서가 회복됩니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열왕기하 22장에서 요시야 왕은 성전을 수리합니다. 성전은 5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전 왕이 므낫세와 아몬 왕인데, 57년 동안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등잔불은 타오르지 않았고,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성전의 여러 군데가 무너지고 상했기 때문에 요시야 왕은 목재들과 다듬은 돌들을 사서 성전을 수리합니다. 그러던 중에 여호와의 율법책이 묻혀져 있던 잔해들 사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을 읽은 뒤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었고, 요시야 왕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성전들을 다 부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공표합니다. 성경은 요시야가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이켰는데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왕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다윗 왕과 비견될 만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이 왕이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율법책의 존재를 아예 알지 못했습니다. 마치 아까 본 그림의 벽 뒤에 숨은 큐피트처럼, 가장 가까우면서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늘 거기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성전을 수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가꾸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까 본 그림처럼, 그림이 주제가 되는 어떤 단서를 상실하면, 그림의 의미나 구도 자체가 달라지게 됩니다. 여호와의 율법책은 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세상의 다른 것을 더 좋아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인생은 하나님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구도와 소실점을 잃어버린 그림처럼, 방향성과 질서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엑스레이를 통해 그림에서 아기 천사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아 여기 이런게 있었네' 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그림의 주제는 회복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베르메르의 그림에 진심이었고, 몇년동안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하고, 복원작업을 오랜 시간동안 하면서, 벽 뒤에 숨어있는 큐피트를 회복하기 위해 매진했습니다.
요시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시야 왕은 '여호와의 성전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실된 마음과 열심으로 성전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것은 건물을 고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시야 한 사람의 마음의 회개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고치는 문제였습니다. 정직한 자의 심령은 <나의 성전>만이 아니라 <우리의 성전>,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의 마음을 함께 회복합니다. 
요시야 왕이 하나님의 뜻의 흔적인 <율법책>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그 흔적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11절을 보면 요시야 왕이 옷을 찢었다고 표현합니다. 옷을 찢는 것의 원형은 마음을 찢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 앞에서 마음을 찢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에 반드시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쫓아낼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어둠의 사사 시대를 거쳐서, 다윗 왕이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대를 만났지만, 솔로몬 시대를 지나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왕조가 갈라지고 시작되는 시대에서 다시 우상 숭배를 시작했습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산당에 두었고, 그 죄가 이스라엘 왕조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므낫세라는 왕의 시대에 그 죄가 가장 극렬하여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죄 때문에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악의 꾀임으로 빠졌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죄악이 너무나도 커서 여호와께서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요시야 왕은 율법책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지금 책이 23장인데, 열왕기하가 25장까지입니다. 열왕들,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야기가 두 장밖에 안 남았다는 것은, 왕들의 이야기가 파국을 향하고 있으며, 위기 앞에 서 있음을 의미합니다. 
 
4
위기라는 말은, 현재가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미래에 대처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무력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들을 가지고 미래에 대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위기를 넘기지 못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위기를 넘어가는 힘은, 나의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다시 발견하는 것에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을 통해,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그림 복원 작업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철저히 파헤치고, 그 흔적을 복원하여, 오늘 말씀하시는 뜻을 발견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요시야 왕이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여호와께서 내리신 진노가 매우 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죄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위기는 <우리>가 조상들의 죄 속에 또한 속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공동체라고 합니다. 공동의 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동떨어진 개개인이 아니라 Kollektivsingular로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운명을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요시야의 사명은 그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성읍을 멸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사실 이 요시야 이야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시야 혼자 이 선한 역사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어머니 여디댜 덕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한 힐기야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흔적을 지나치지 않고 보고합니다. 정직한 서기관이 그것을 세심히 읽습니다.
율법책을 발견한 이유는 성전을 수리하던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정직한지 7절을 보면 그들의 손에 맡긴 것을 회계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 진실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면 율법책을 가지고 힐기야, 아히감, 악볼, 사반, 아사야가 함께 여선지자 훌다에게 나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받은 훌다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맞추거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직하게 전했습니다. 
여러분, 이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회개의 역사가 보이십니까? 이 Kollektivsingular의 불꽃이 보이십니까? 그러나 이 불꽃의 시작은 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왕상 13:2를 보면, 이미 이스라엘의 첫 왕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산당을 지을 때, 주께서 요시야 왕이 이 산당을 없애고 회개의 역사를 시작할 것을 360년 전에 예언하십니다. 
 
회개의 불꽃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완성하십니다. 요시야 왕과 제사장, 선지자, 서기관들이 회개하기 시작하고,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때에 주께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9절. 네가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내가 내릴 재앙을 네가 보지 못하리라.
회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360년 동안 지속된 진노를 잠시 그치겠다고 하십니다. 그 죄악이 아무리 크고, 진노가 커도, 회개하는 심령을 하나님은 귀기울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를 넘어서 중보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회개한 심령들은 중보의 자리로 나아가서 회복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 왕 때에는 아직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회개 뿐 아니라, 회복의 역사를 우리가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먼저 중보하셨기 때문입니다.
 
5
이 수련회를 여는 이 시간, 우리는 회개 이전에, 집회에 오는 모든 청년들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이 회개의 불꽃, 거룩함을 향한 불꽃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상한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너희의 기도를 반드시 듣겠다. 나를 찾고 찾으면 너희가 나를 만날 것이다. 삶에서 나의 흔적을 지나치지 않고, 구하고 구하는 자에게 내가 나를 드러낼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혼자 존재하지 않고, 교회로서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도전하십니다. “이 성전을 고치라. 너희가 함께 고치라”
이 성전을 함께 고치길 원하십니까? 이 부족한 사람이 먼 데서 와서 말씀을 전하는 이유도, 주께서 우리가 함께 이 성전을 고치길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다를 뿐, 우리는 한 교회입니다. 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함께 여러분이라는 이 성전을 함께 고칩시다. 함께 힘차게 기도하고, 전심으로 회개하고, 마음 다해 중보합시다. 주께서 반드시 이 수련회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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