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8월 2일 저녁설교, 시편 6편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8월 2일 저녁설교, 시편 6편

jo_nghyuk 2023. 8. 2. 23:18
시편 6편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받는 징계가 너무 무거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우리를 자식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꾸짖으시고 징계를 하기도 하십니다. 
다윗 또한 자신이 범한 죄와 허물 때문에 자신이 징계를 받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징계의 무거움에 대해 하나님의 긍휼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회초리로 맞다 보면, 너무 아파서 울면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부모님은 채워야 하는 징계를 채우십니다. 
이 아픔이 깊이 각인이 되면서 내가 한 것이 정말 잘못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목사 동료가 이전에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실 때에 정말 아프게 때리신다. 그 징계는 정말 견딜 수 없이 아플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그 아픔을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아주 깊게 새기셔서, 우리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그 결과가 아픈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저도 제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아프게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죄는 단순히 용서를 받고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다지도 싫어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끊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생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 안에서, 몸이 수척하며, 뼈가 떨리고, 영혼이 두려움에 휩싸일 정도라고 고백합니다. 
이 시편은 분명 회개의 시편입니다. 
그런데 징계를 받는 다윗이 "은혜를 베푸소서"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신의 징계를 분노로 하시지 마시고, 사랑으로 해주십시오. 라는 간구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죄 때문에 징계를 받고 있음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징계를 받는 중임에도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합니다. 
당신이 징계하시는 것이 옳고 정의롭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의 진노와 분노 아래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4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게 돌아오소서. 주여"
지금 하나님은 다윗의 죄악 때문에 다윗에게서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다윗의 삶에는 지금 빛이 아니라 어둠이 있고,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 있습니다. 
다윗은 간청합니다.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이 징계를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당신이 은혜를 베풀어주지 아니하시면, 저는 지옥으로 가야만 합니다. 
 
제 아들이 잘못하면 저는 '이 노옴-'하고 낮은 목소리로 혼을 냅니다.
그러면 무서워서 이 아이가 우는데, 우는 중에 '아빠-' 하면서 저에게 안깁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지금 저에게 혼나고 있는데, 저에게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제가 그 아이의 유일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혼내는 제가 그 아이의 유일한 피난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혼낸 후에 저는 그 아이를 안아주고 다독여줍니다.
다윗의 눈물과 호소는 이 아이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주님께 징계를 맞아서 아파하는 중에, 다윗은 여전히 주님에게서 회복과 위로를 찾습니다. 하나님에게 책망을 들었다고 기분 나빠하며 멀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저에게 돌아오세요, 저는 하나님이 없으면 죽습니다. 하고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듣고 훈계를 들을 때에도, 그리고 그 책망과 훈계가 너무 아파도, 다시 하나님께 피난처를 삼고, 눈물의 회개로 용서를 구하면, 주님은 다시 우리를 안아주시고 주의 사랑으로 상처를 만져주십니다. 
 
8절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라고 다윗이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우리는 다르게 읽어야 합니다.
단순히 악한 자들아 나를 괴롭히지 말고 떠나라. 는 고백만이 아니라, 내가 이제 악을 행하는 이런 무리와는 관계가 없음을 선포하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다는 말은, 또 9절에서 주께서 내 간구와 기도를 받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회개를 받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내 죄를 사하셨다는 고백은, 내가 이제 죄악에서 떠났고, 더이상 그 행악을 그치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징계하시고 책망하시는 하나님과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입니다. 
오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정의와 사랑은 하나입니다. 공의와 용서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죄를 고치고,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고, 거룩함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 된 심정으로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징계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징계하시는 하나님만이, 그 징계의 손길을 다시 거두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징계를 받을 때에도, 우리는 주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 전까지 징계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징계로서의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틀렸습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징계의 손길을 거두어주시고, 제가 회개하오니, 다시 나의 이 상처를 고치시고, 아버지의 위로를 베풀어주십시오.
제가 주께 돌아가오니, 주께서도 나에게로 돌아오소서. 제가 이 죄악에서 떠나겠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원수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시고, 우리 삶에서 어둠을 치워주실 것입니다.
다윗의 삶에는 이유없는 고난도 있었지만, 이유있는 고난도 있었습니다.
이유없는 고난은 마귀의 훼방이었지만, 이유 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었습니다.
다윗은 정직했기 때문에, 그 징계가 옳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 중에도 주님의 긍휼하신 사랑, 헤세드의 은혜를 위해 간구했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징계를 멈추고 다윗을 다시 치료하시고,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의 훈계와 책망의 회초리는 우리를 정금처럼 연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나를 건지소서. 진노 앞에 저는 죽을 따름이며, 주의 사랑만이 제가 살 길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는 주님의 옳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연약해도, 주님 앞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하며, 주께 용서받고, 또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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