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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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포인트 가드

jo_nghyuk 2009. 5. 24. 00:53






드라마 『CHANGE』를 요즘 보고 있다. 일개 시골 초등학교 교사인 아사쿠라 케이타가 일본 정국에 입성해서 총리가 되어 국정을 맡는 스토리인데 사실 케이타에게 진한 카리스마나 탁월한 결단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자신의 신념과 정직이 있으며 그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중심이 있었으며 사실 탁월함은 그의 동료들에게 더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섬김의 기술」이 아닐까. '팀웍이 생명'이라고 말하는 그 안에서 사실은 자신이 그 중심에 서고 싶은 야욕은 모든 이가 도전받는 유혹이다.

드라마에도 계속해서 그런 그릇된 야욕을 버리지 않는 정치가가 '팀웍'을 흐리는 모습이 보여진다. 이 드라마는 현재의 일본 정치에 대한 바램이 반영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가 아닐 수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팀을 세우는 것'이며 자신이 그 중심의 위치에 서 있다면 그것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좀 낮추고 다른이들의 목소리들을 조율해주는 (작은 것은 키워주고 큰 것은 달래주는) 훌륭한 포인트 가드가 되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훌륭한 엔지니어이며, 팀을 모니터링해줄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팀플레이'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인간적으로 그러한 위치를 스스로 떠안으려 할까?
낮아지면서도 다른 이들을 높여주는. 때로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지라도 자신만은 높은 소리를 내야하는 진정한 리더의 포지션 말이다.
참으로 예수님은 훌륭한 포인트 가드이지 않은가. 자신이 교회의 머리이면서도 그의 지체들을 그들의 은사의 분량대로 포지셔닝시키는 전략을 보라.
그리고 그의 전략은 '기능적'이지만 인간을 기능의 도구로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어울리지 않거나 합당하지 않은 이에게 그 직분을 감당시키시는 때가 참 많으시다.
이것을 보고 우리가 과연 '예수님이 우리를 써먹기 위해 부르셨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리더는 힘의 균등 분배를 아는 사람이다. 포인트 가드는 팀의 저울이며, 최전방이며, 최후방이고 팀의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비우는 플레이를 아는 플레이어다. 예수는 공정하다. 그는 공평하시고 정의를 아시는 분이시다.


















 



세상에는 참으로 부숴진 불꽃들이 많이 있다. 그들 안에는 열정이 있으며, 구겨진 소망이 세탁기에 넣고 돌린 바지주머니 속의 소중한 증서처럼 너덜너덜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양으로 그들의 은밀한 호주머니 밑바닥에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내면의 외침이다. 이것이 '살고 싶다'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누가 이 절규를 들어주시는가. 누가 걸레가 된 수건을 깨끗게 하실 수 있는가. 누가 새롭고 산 길을 제시하시는가. 누가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우리를 이끄시는가. 누가 우리에게 진정한 ''을 제시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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