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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보는 법

jo_nghyuk 2011. 7. 4. 21:25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가 감옥에 있기 전의 10년동안 나치 정권 치하의 공포와 고통 가운데서 사는 동안 교회와 신학이 배웠어야 할 것에 대해 감옥 안에서 성찰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에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경험이 남겨져 있다. 우리는 세계사의 위대한 사건들을 아래로부터 보는 법을 배웠다. 곧 버림받고 의심받으며 학대받고 힘없이 연약하며 억압받은 자들로부터, 간단히 말하면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각으로부터 역사를 보는 법을 배웠다"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New York : Macmillan, 1971). p. 17.) 

 성경과 복음이 부유한 사람들만의 시각에서 읽혀지고 해석되는 것과 '아래로부터', 곧 성공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기준에서 볼 때 보잘 것 없고 약한 사람들의 눈을 통해 읽혀지고 해석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매우 천천히 배우고 있다. 신학이 복음을 제 1세계의 불신앙인에게 보다 잘 이해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느냐, 아니면 제 3세계의 잊혀지고 비인간화된 사람들의 상황에 대항하여 복음을 증거하느냐에 많은 것이 달라진다.

발터 벤야민이 역사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지금까지의 역사가 주류, 즉 역사를 이끌고 갔다고 생각되어지는 이들의 관점에 의해서 해석되어지면서 왜곡되어져 있는 부분이 있으며 본회퍼가 언급했던 '아래로부터' 세계사의 사건들을 보는 것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미 문학 역시도 제 3세계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말 그대로 우리는 아주 천천히 '아래로부터, 그리고 주변에서부터' 보는 법을 이제 마악 시작한 단계에 있다. 주류 신학, 주류 철학, 주류 문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미 롤랑 바르트와 함께 불어닥친 새로운 사조로 인해서 무색하게 되어졌는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주변에서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주류에서부터 시작하려 하는 자세를 무의식적으로 취하고 있다. 시대는 포스트 모던이라 하지만 우리는 포스트 모던 이전 세대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란 사조의 문외한같이 느껴질 때가 참으로 많다. 세계적이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넓게, 그리고 더 조밀하게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하고 있다. 참으로 오래도 블로그와 내 사고를 삭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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