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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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콰이엇 타임

jo_nghyuk 2013. 1. 30. 19:08
교토에 갔던 일이 생각이 난다. 조용함과 한적함을 찌는 듯한 여름 중에 찾아 저가항공을 잡아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교토에서는 지인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었지만, 일정보다 먼저 교토 역에 도착해버렸다. 무더운 한여름의 교토 중앙역 광장은 부산했으며 나는 이전에 가졌던 인상의 여정을 찾아 헐떡였으나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일행을 만나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도 나는 그 인상의 루트를 차창 밖으로 기를 쓰고 찾고 있었고 어디서도 추억은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라멘 집에 앉아 있다. 이 집이 맘에 드는 것은 블랙과 레드 컬러의 강렬한 일본적 대비와 더불어 쿨 재즈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고, 물 컵이 플라스틱이 아닌 유려한 글라스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렬한 정갈함, 그것이 내가 교토에서 가졌던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이었고 20대에 보았던 교토와 30대에 다시 방문한 교토는 너무나 그대로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환상은 사라지고, 나는 평범하고 초라한 시골마을의 일상 속에 침입한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리워서 지난 8년 동안 꿈에도 그리워하며 교토를 찾고 있었을까. 
조용함과 한적함을 찾아 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현재 서점가에서 범람하는 교토에 대한 여행책자 (참으로 기현상인데) 에서 말하는 교토에 가면 산보를 하게 될 것이고, 아기자기한 디저트와 예쁘고 단정한 카페, 고풍스러운 거리를 거닐 수 있을 거라는 속삭임에 대한 기대감이 없던 것은 아니나, 난 사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은 이 도시에 대해 없었다. 
그냥, 내가 이 도시를 어떻게 보게 될까. 다시 만나면, 여전히 설레임을 안고 20대에 사랑했던 것을 30대에도 즐거워하게 될까 에 대한 내부적인 동인에 대한 호기심이 대부분, 나머지 언저리에는 역시 조용함과 한적함, 좀 쉬고 싶음에 대한 생각이었으리라.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라멘집에는 칸막이가 있다. 앞사람이 라멘을 먹는 것이 좁은 틈으로만 보인다. 때로는 이러한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본적인 고독을 찾게 만든다. 그러나 내가 이 도시에서 느낀 것은 너무나, 단절되어 있으며 (외부 도시에 대해, 개개인에 대해, 아니 우주적인 네트워크에 대해) 너무나, 고독하고,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것이었다. 
한 밤중에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베개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한국에 있는 아내가 그리웠다. 오래 떨어지지 않으려 2박 3일의 미니멀리즘의 극치인 일정을 짜서 온 것인데 1박도 하기 전에 외로움이 사무치게 되는 곳, 교토는 그런 곳이다. 외로움을 찾아서 오는 이에게 교토는 더 지독하게 군다. 고독을 찾으러 왔다면 더 구린내나는 슬픔을 안겨준다. 이 도시는 원래 고독하고, 원래 고립되어 있다. 쉬고 싶어 온 사람은 오히려 권태를 느끼며 소스라치고, 혼자가 되고 싶어 온 사람은 다시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가모가와 강변에서 흐느끼게 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보스 캔커피 하나를 자판기에서 뽑아 나는 강변에 앉았다. 건너편에서는 엔카가 흐르고 있다. 기타를 치며 부르는 청년 무리와, 군무를 추는 집단, 마라톤을 하는 대학생들, 노로유카를 즐기는 회사원들로 가모가와는 담배연기처럼 굶주림으로 자욱했다. 
기가 막히게도 나는 데이터로밍이 되는 아이폰을 가지고 이 강변에서 에버노트로 쓴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며, 댓글이 달리는 것을 구경하였다. 다리 위에는 맥도날드와 애플스토어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한국과, 서울과, 미국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되어진 채 외로웠다. 

교토를 떠나는 날 나는 철학자의 길을 산책한다. 중간에 길을 잃어 산으로 잠시 접어들자, 무시무시한 사원으로 올라가는 육중한 잠잠함을 품은 거대한 돌계단을 만났다. 다시 발길을 돌려, 철학자의 길 끝에서 베어(곰)이라는 카페에 들려 토스트와 커피가 나오는 모닝 세트를 먹으며, 성경 어플을 켜고 묵상을 했다. 묵상이 끝나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찾던 조용함과 한적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교토에서 찾아온 것에 대해 더 놀라고 있었다. 교토에서는 조용함과 한적함을 오히려 찾기 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고독과 외로움의 상징인 도시에서, "함께 함"의 상징인 임재가 찾아온 것에 대해 산뜻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외로워지기 위해 이 도시에 온 것이 아니라 참으로 조용해지기 위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모닝 세트를 먹던 철학자의 길 끝의 베어 카페에서 나를 찾아왔다. 인생 중에 가장 행복한 Quiet time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카페 베어, 철학자의 길, 교토, 201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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