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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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콰이엇 타임

jo_nghyuk 2013. 1. 31. 14:22
키예프였다. 마리앤을 만난 것은. 마리앤은 강가를 보며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대화 상대를 들뜬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다. 마리앤만큼은 건너편의 조용한 풍광을 보며 무언가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나는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양이처럼 무언가를 끄적이기만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옆에 서서 강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니?'
마리앤이 말을 건넸다. 딱히 말을 걸려고 그 옆에 서 있던 것은 아니였다. 그저, 그녀로 하여금 잠든 사람의 머리칼처럼 의식을 조용하게 만드는 풍광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어쨋든 그녀는 저 강가에서 주는 생각을 가지고 수첩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고, 나는 그녀가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강 건너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너는?'
'아주 좋아, 사람들도 친절하고, 우크라이나는 참 평온한 곳이네,'
마리앤은 핀란드에서 차를 타고 우크라이나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녀가 함께 온 친구들과는 달리, 그녀는 검고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핀란드 사람들의 금발 머리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만큼이나 눈부시게 명징하다. 북반구의 태양처럼, 하얗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노란색이다. 그리고 이들은 초록의 동공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하다 보면 마치 자작나무 숲 속에 있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우정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함께 조용하게 행간을 소유할 수 있는 친구는 소중하다. 우리는 그렇게, 평안하게 강가를 보면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가 서 있던 쪽으로 태양이 있어서인지 눈썹을 찡그리며 마리앤은 조용히 내게 질문들을 건넸다. 이 정도의 조용함이 공유되기 시작하면, 누가 더 내향적인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침묵을 깨야 된다는 강박이 없는 것이다. 그냥 조용하게 말을 건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답한 이후에는, 서로 그것에 대해 다시 침묵의 행간을 끼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마리앤이 그 자리를 떠나고 나서,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강 건너편을 스케치하려고 하다가 곧 그만둬 버렸다. 강 건너편에 있던 것을 마리앤이 수첩에 담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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