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시편 4편 "Sola!"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시편 4편 "Sola!"

jo_nghyuk 2013. 10. 26. 20:06

시편 4편

“Sola!”


(도입부)


오늘은 종교개혁기념 주일입니다. 여러분, 마틴 루터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지금의 기독교 교회가 있기 전에, 16세기까지 모든 교회는 동방의 정교회와 서방의 가톨릭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중동아시아 지역에는 동방 정교회가 있었고, 유럽의 지역에는 가톨릭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톨릭 교회에서 죄를 사하는 데에 있어서 면죄부라는 것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헌금을 하는 사람에게 죄를 사해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고, 죄를 짓기 때문에 면죄부를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면죄부를 판매한 이유인데요. 당시 가톨릭의 재정 상황이 안좋고, 교회 건축이 필요한 상황이라서 사실은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 가톨릭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신성화해서, 성모 마리아를 믿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와 다른 위대한 성인들을 신성화해서 함께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성만찬을 할 때에, 떡과 포도주를 위해 기도하면 실제로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와 살의 의미를 기리는 것보다, 떡과 잔이 실제 살과 피로 변한다는 이상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또, 예배를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 언어는 라틴어밖에 쓰지 않았는데, 성경도 라틴어로 쓰여있어서, 이 어려운 라틴어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배에서 무엇을 듣는지도 몰랐고, 성경을 직접 읽을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가톨릭 신부가 예배를 하나보다, 성만찬을 하면 떡과 포도주가 진짜 살과 피로 변한단다, 그냥 믿으라니까 믿어야 된단다, 죄를 사함받으려면 신부를 찾아가야 하고, 면죄부를 사야 죄를 사해준단다. 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의로운 일을 많이 할수록 그것이 하나님께 상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수도 있다고 가르쳤고, 그렇기 때문에 면죄부를 많이 살수록 다른 사람의 죄도 구원하고, 지옥에 간 조상들도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서 자신의 죽은 아버지 어머니들을 위해 면죄부를 사는데에 돈을 많이 쏟았습니다.


마틴 루터라는 사람은 가톨릭 신부였습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종교 개혁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가톨릭이 말하는 것이 잘못된 신앙임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면죄부를 사야,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죄를 사함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의로운 행위를 의지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속죄함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읽지도 못할 성경을 신부들이 말하는대로 믿는 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하고, 성령님만이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결국 마틴 루터는 가톨릭에서 추방이 되었고, 이때부터 우리 교회가 속해있는 장로교를 창시한 깔뱅과 함께 종교개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읽습니다. 

면죄부를 사야, 헌금을 많이 해야, 그 만큼 의로워져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고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더 의로워져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틴 루터라는 사람이 가톨릭 교회가 하던 많은 일들, 사람의 행위를 의지하고, 사람의 의로움을 의지하던 것들, 그리고 그 이면에 더러운 돈에 대한 탐욕과 죄악이 있었던 것들을 폭로하며 저항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에 마틴루터가 외친 것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성서 Sola scripta


이 Sola라는 말은 “오직” “단 하나뿐” 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만,

그리고 가톨릭이 말하는 사람이 만든 전통, 면죄부나 성모 마리아, 잘못된 신비적인 떡과 포도주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성경에 쓰여진 것에서만 진리는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루터가 한 말이 있습니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 다시 처음으로, 순수함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1517년에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1)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안 믿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서 조롱을 받습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그들은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된 계획을 세우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경건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다윗을 그들은 조롱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롱하는 그들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다윗은 하나님을 경건하게 의지하는 데도 상황이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부를 때에 응답해주세요. 제가 어려울 때마다 저에게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 오늘 드리는 제 기도도 받아주세요.”


그의 마음은 지금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어렵지 않은데 이렇게 응답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그의 상황이 지금 전혀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오해하고, 조롱할 정도로, 자신의 상황이 똑같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계획과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잘 되고 있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은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상황이 점점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달려가리”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위를 바라보면 모두 다 말하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면 

다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며 내게 타협하라 하지


세상이 말을 하는 성공과 실패가 내 삶이 막연하다 말해도 

주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 내가 바라는 나의 꿈


하루에도 몇 번씩 혼란스럽고 넘어져도 

내가 믿는 정답이 아닌 것을 따르며 주 위해 산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달려가리 주 위해 살아가리

더욱 어려운 환경과 장애물이 다가와도

달려가리 분명히 내가 가야 할 그 길과

가슴이 말하는 그 꿈을 향하여



여러분의 주위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목적을 이루려면, 어느 정도 타협하고, 어쩔 수 없어, 다 그렇게 사는데 뭐, 어쩔거야”

이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 삶이 막연한 것 같고, 하루에도 몇번씩 혼란스럽고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마음에 의문이 듭니다. “이게 정답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상황과 환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장애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혼란스럽고, 넘어지기를 반복합니다.

(3)


이 시편 4편에는 4절이 끝나면서 (셀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셀라,는 잠시 쉬라 라는 음악적 표기입니다. 잠시 노래를 멈추고 잠잠해지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이 셀라가 지나고 난 후에 다윗의 노래는 한층 더 강한 어조로 변합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세상 방식대로 범죄하며 타협하는 것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라” 라는 것은,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나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의 제사와 더불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우리가 살아나가는 것을 “의의 제사”라고 부르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기를 결단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방식은 편하고, 쉬운 길이지만,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셀라)가 나오기 전까지 다윗은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혼란스러워합니다. 고백하면서도,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잠시 (셀라)로 인해, 침묵하고 난 후에, 다윗은 다시 노래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라! 그리고 슬퍼하지 말고, 너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실 것을 기대하고 전부 의지하라!”


6절은 말합니다. “여러 사람이 말하는데,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냐”


이 시대는 좋은 일에 모델이 되는 사람, 본이 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본이 되는 사람, 선을 보이는 사람을 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갈망이고 갈증입니다. 나는 연약해서 타협해도, 누군가는 타협하지 않고, 진리가 진리되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타협해서 잘 먹고 잘 살아도,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의의 길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선한 길로 가지 않으면 마음에 해결되지 않는 가책과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다윗은 가톨릭처럼 “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 사람들이 선을 보일 자, 롤 모델이 누구냐 묻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세요!”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하신다! 라는 믿음입니다. 내가 연약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반드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신다! 라는 “오직 하나님”의 믿음을 다윗은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 저 그것 없으면 못해요. 저는 너무 약해서 세상을 이기기 힘들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실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실 때, 하나님이 저를 통해 세상을 이길 것, 저는 믿어요. 하나님 나타나 주세요.


그리고 다윗은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내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저 사람들에게 곡식이 많고 포도주가 많지만, 세상에서 저 사람들이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지만, 저는 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저 기쁨보다, 하나님이 지금 저에게 주시는 기쁨이 훨씬 행복한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잠도 자고 일어납니다! 왜냐면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박진영이라는 가수가 놀 만큼 놀아보고, 벌 만큼 벌어봤다고 노래에서 말하지요?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 걱정 없이, 사랑도 해볼만큼 해봤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 같던 박진영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이 있어, 해결되지 않는 배고픔이 있어”

그러면서 노래 마지막에서 읊조립니다.

save me, please save me, 

나를 구해달라는 말입니다. 나를 구원해달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리 내 뜻과 내 방법대로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시지 않는다면, 나에게 편안함도, 안전함도, 마음에 평안도, 만족도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부족해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나는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 수 있다! 저 사람들보다 나는 더 행복하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 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 때문에, 너무 요동하지 마십시오.

지금 죽고 못사는 것처럼 달리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노력만이 나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 떠나서, 내 노력과 계획, 내 방법으로 세상 방식으로 타협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기쁨이 없고, 불안하고, 신앙의 타협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됩니다. 


다윗은 지금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이 바꿔주셔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바뀐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기뻐하는 것은, 다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시 은혜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이 기초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뀐 것은 다윗의 마음이고, 믿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시작할 때, 그는 상황이 바뀌어야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오히려 하나님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큰 사람도, 위대한 사람도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그는 아주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편 3편 1절에서 다윗은 나의 대적이 얼마나 많은지, 하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시편 3편 6절에서 그는 고백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을 쳐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진로도, 문제도, 그 모든 해결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 해결 방식이 우리의 뜻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잠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아니 오래 되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

자신은 약하지만,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상황보다 큰 사람이 됩니다.

다윗은 천만인보다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은 꿈도 못 꾸던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는 한두개 정도 해결을 보기 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을 의지하자!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고 외치면서, 그는 모든 가톨릭의 세력들, 아니, 그 나라의 왕보다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우리의 삶이 타협이 아니라, 혼란스럽고 넘어져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의의 제사”를 올려드리기 원하며, 행동하며 산다면, 


여러분의 상황보다, 하나님이 더욱 크신 것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이번 한주,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봅시다.

세상이 하는 말보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성경을 다시 펴서, 아침마다 묵상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믿고 굳게 붙들어봅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승리가 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