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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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2월 2일의 수기, rétablissement

jo_nghyuk 2023. 2. 2. 21:39

어떤 것이 망가지는 경험을 하면, 내 안에 원래부터 자리하던 비존재에 대한 감각이 뚜렷해진다. 며칠 영문을 모르고 계속 잠을 잤다. 잠시 아파 누워 있는데도, 바깥을 아예 나가지 못하고 몇달간 격리되어 있던 코로나 시절의 기억의 상흔들이 전부 되살아나며 나를 그레고르 잠자와 같이 사회로부터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내내 구름이 가득했다. 아침에 학생식당에서 소세지와 샐러드를 먹고, 신학부 도서관에 짐을 넣고 산책 겸 언덕을 올랐다. 험한 경사로를 오르며 지인과 헐떡이는데 험한 인생길을 함께 걷는 은유처럼 느껴졌다. 망가지는 경험은 대체로 무언가를 상실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아픈 와중에도 시험을 앞두고 두 주나 결석하게 된 프랑스어를 걱정했다. 생각치 않게 빠져나가는 병원비와, 누군가를 상실했던 때의 나와, 누군가를 상실해가는 누군가를 보며 무너져가는 성벽을 떠올렸다. 하이델베르크를 떠나기 전 기차역의 서점에서 무너진 성벽을 복원해놓은 사진첩을 발견했다. 그러나 무너진 것부터 본 사람은 그 복원된 형상을 꿈꾸기 어렵다. 

무너짐부터 경험한 사람이라면 복원된 형상을 꿈꾸기 어렵다. 회복을 소망하는 것은 종말론적인 상상력이 아니던가. 그 누구도 더이상 꿈을 꾸지 않을 때가 있다. 보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회복은 시간의 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는 것이 죽음처럼 싫어졌다. 몇년 전 그만 두었던 레비나스의 totalité et infini와 리쾨르의 soi même comme un autre의 뒷부분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복원하는 마음으로. 

망가짐의 경험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복원의 경험을 선물해주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이델베르크를 떠나올 때 비로소 해가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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