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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정의 수기 1: 사랑의 내뻗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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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정의 수기 1: 사랑의 내뻗음

jo_nghyuk 2023. 11. 24. 07:59

아른헴에 다녀왔다.
사실은 북쪽의 흐로닝언에 가보고 싶었다. 네덜란드에서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 여전히 있지만 나는 늘 noord 쪽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더 큰 공허와 결핍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내게 되물었다. 그래, 거기까지 멀리 혼자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네 눈에 좋은 것을 보고, 네가 가고 싶은 만큼 멀리 가서 네 갈망을 채워도, 거기에 가서 너는 어떤 의미를 얻고자 하는가?
그 결핍은 내 안에서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러다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문득,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것을 나누고자 하는 갈망. 힘에 부치도록 더 내어주고자 하는 갈망. 레비나스의 말처럼 이 갈망은 사실 결핍에서 온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갈구함인듯 보였다. 타자를 만나고, 타자를 사랑하고 싶은 깊은 갈망, 쭉 내뻗어 상대방을 만나고,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은 갈망.

나의 여정은 그렇게 바이마르에서 아른헴으로, 아른헴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알메이러로, 렐리스타드로, 다시 아른헴에서 네이메헌으로, 뮌스터로, 하노버로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사흘을 계획한 여정이 자꾸 뻗어나가고, 유예되었으며, 새로운 여정을 만나는 방향으로 연장되었다. 우회로는 더 많은 길을 배우게 한다는 바우하우스의 표어가 생각이 났다.

나의 친구는 아내의 작은 차를 몰고 아침의 교통체증에 고통을 겪으며 암스테르담 센트랄의 뒷편까지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우리는 8년 전처럼 Dwanze Zaken에서 커피를 마셨다. 세심하게 다져진 양파가 올라간 피넛 마요네즈에 감자튀김을 먹으며 웃었다. 그의 아내, 또 나의 귀한 친구가 가르치는 몬테소리 학교에 들러 친구의 아들과 딸을 만났다.
K는 여전히 놀라운 여성이었다.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겸손함이 경탄스러웠다. 사실 영성의 깊이와 겸손함은 함께 간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는 유머와 조용한 침묵, 그리고 깊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헛소리도, 지혜로운 말도, 즐거움도, 평안도 다 우리의 사랑의 교제 안에 있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배울 수 있어서 너무 너희가 귀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그리웠으며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연착되는 기차 덕에 자정이 지나서야 아른헴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깔린 운하를 따라 붉은 벽돌의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붉은 벽돌의 집들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고 싶었다. 나는 그 어떤 나라보다 네덜란드를 사랑한다.

다음날 아침 네이메헌에서 붉은 벽돌을 눈에 실컷 담고, 손으로 촉감을 담고, 스케치북에 형태를 담았다. 사랑하는 제자가 아른헴으로 왔고, 우리는 오징어 튀김과 새우 튀김을 먹었다. 그리고 교회와 도서관을 지나 마트에서 요기를 하고 뮌스터로 향했다. 친구들에게와 동일하게 나는 그들에게 사랑하며,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가을은 시작만큼이나 끝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쉬운 만큼, 끝이 있는 만큼, 함께 한 이들이 더욱 소중함을 고백하는 것. 감사를 표하고 사랑을 전하는 것.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인생에 있을까?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마침내는 그 반향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 오는 그 사귐을 즐거워하는 것. 그 시간에는 안식과 거룩함과 기쁨이 있다.

멀리 가야 자유한 것이 아니라, 의미를 발견해야 자유함이 있고 사랑을 해야 자유함이 완성된다. 고독하게 시작했던 여행이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하며 끝을 맺는다.

그래서 네덜란드 여정을 늘리려는 노력을 이제는 그치고,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아쉬워하며, 기분 좋게 끝맺음을 하려 한다. 잘가,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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