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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정의 수기 2: 또 다른 사랑의 형태

jo_nghyuk 2023. 11. 24. 08:21

아른헴 숙소의 집주인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눈에서 지성이 비추이는 것을 느꼈다. 네덜란드인들에게서 내가 자주 보는 눈빛이다. 어딘지 모르게 고독하고, 동시에 단호한 듯한 표정. 부드러움 대신 단단함을 선호하는 야성이 그 눈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느끼기에, 네덜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감각을 치열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화를 이루고야 마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는 기후문제를 에너지전환에서 해결을 찾고자 하는 연구자이며 작가였다. 우리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아른헴과 네이메헌의 역사, 그리고 Lely가 바다 위에 구현한 엄청난 간척지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Lelystad에는 그의 동상이 아주, 아주높은 곳에 홀로 고독하게 세워져 있는데, 화가 프리드리히의 Der Wanderer를 연상시켰다. 그림 속의 그는 안개의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Lely는 Amsterdam과 동쪽 사이에 난 거대한 북해를 죄다 간척해버렸다. 나는 친구에게 대체 왜 저 인간은 공산주의 정권의 혁명가만큼이나 높은 곳에 혼자 솟아 있는가 비아냥거렸지만, 북해를 끌어안기 위해, 더 먼 곳까지 나아가기 위해 그는 그처럼 높고 외롭고 쓸쓸해야 했을지 모른다. Gigantic scale of someone is nothing but out of scale for the else. But, why not?

네덜란드 사람들에게서 어떤 친숙함을 느낀다. 이상하지만 분명한 인간들이다. 변태처럼 감각적인데 지나치게 성실하다. 이들의 자세는 마치 직선적이지만 그 끝은 곡선을 이루는 다닥다닥 붙은 암스테르담의 집들같다. 이들의 집요한 천착과 끈기, 성실함과 열정은 나를 꾸짖는다. 멍청한 녀석아, 주욱 내뻗지 않고 무슨 큰
일을 하겠다고. 그렇게 소소하고 느리게, 부드럽게만 해서 무슨 크로키를 그리겠다고.
두려움에 대항하지 않으며, 불확정성을 친구처럼 껴안지 못하는 자는 꿈을 현실로 만들지 못한다. 상상력이 없는 인류는 현실을 고치지 못한다고 그 집주인은 말했다. 상상력은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는 능력이다.
단순히 천진난만할 것이 아니라, 명징하게 이성적이어야 일렁이는 북해 위에 붉은 벽돌을 한장씩 쌓아 직선의 힘을 가지고 마지막 아름다운 곡선을 한 획 그을 수 있다


새로운 일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불확실성의 혼돈을 창조의 질료로 보지 못하는 용기의 부족이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차가운 세계까지 뻗어나올 때에만 세계는
변화된다. 몰트만의 말처럼, 신은 아이가 하나 탄생할 때마다 세상을 향해 꿈을 가진다. 아이만이 새로움을 불러온다. 아이만이 미래를 가져온다.
그래서 침노하는 자가 복이 있다. 내버려 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야곱은 전능자와 탱고를 추지 않았다. 그들은 씨름을 했고 진심으로 힘으로 겨루었다. 허벅지
관절이 나갈 때까지 야곱은 내뻗는다. 환도뼈가 부러지게 만든 그 씨름이 실패로 끝났는가? 아니, 하나님은 그가 자신과 겨루었고 이겼다고 말씀하신다. 신은 씨름하는 자를 무시하지 않는다. 불 같은 사랑을 하는 연인은 때로 싸움을 걸어온다. 사자는 서로 물어뜯으며 엉켜 사랑을 나눈다. 거친 것도 사랑이다. 꾸짖음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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