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52)
저녁의 꼴라쥬
방바닥에 엎드러져 장농 밑을 보는 일이 간혹 있다 백사장처럼 널려있는 먼지 너머 침침한 바다가 웅크리고 있다 난파된 것들을 품에 안고서 장농의 깊이와 난파의 연대기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하나의 뒤틀린 지각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게처럼 납작해질 때 나는 비로소 장농 밑을 보게 된다
주위의 소음에 대항해 두 귀에 손가락을 우겨넣는다 비행기체 안에서 듣는 것처럼 외부로부터 기류의 소음이 소용돌이쳤다 내륙으로부터 depature하자 얼기설기 복잡한 도로와 거대한 입방체 건물이 반도체 칩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도 건물도 바다도 보였다, 작은 것이
H코드가 있어? 그럼, 이것은 순환계를 이탈한 한 화음 G와 A 사이 쥐샵과 에이플랫의 접점에서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진원지를 두는 설령 다른 어떤 즉흥적인 친구들이 부지중에 그 소리를 가깝게 지나가긴 했어도 한번도 의식적으로 닿은 적이 없고 담겨지지 않았던 일단 H로 들어가면 이어지는 알파벳들처럼 그 뒤로 음계들이 쏟아져 구르고 색에서 빛으로 개념이 넘어가듯 습관적인 도식이 깨지고 나서야 만져지는 H코드는 헤븐리Heavenly코드이며 하이어Higher코드
나는 이 사회의 복지 수준 그래프를 보석2길 금은방 주인들이 먹고 내어놓은 잔반을 드시는 할아버지들을 보며 그린다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에 종로3가 지하철 쉼터에 웅크려 모인 나와 그녀의 할아버지들은 종일 하시는 말씀이 없으시다 아니, 발화하는 것이 없으시다 노인들의 옷은 대개 왜 떨어진 낙옆 같은 색을 하고 있는가
언젠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대지를 잃은 인디언들을 본 적이 있다 시대를 환승하지 못한 그들은 씨디를 앞에 쌓아두고 4호선과 5호선의 환승역에서 인디언 전통피리를 서울시민들 앞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피리는 여전히 인디언 특유의 신비한 바람을 담고 있었으나 어쩐지 악기에서 괜히 진이 빠져 나오는 바람소리 같은 것이 같이 섞여 들리는 것만 같아서 지하철이 몰고 온 바람이 부는 환승 통로에서 우두커니 서있게 되어버렸던 일이 있다
사랑해, 라고 말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의 목록입니다 : 44개의 얼굴 근육 32개의 치아 (사랑니를 포함합니다) 윗몸 일으키기 1회를 실시하는 혀 분당 200Hz짜리 성대 30초의 긴장감 3000번의 맥동 1인의 수신인을 만들기 위한 수백의 조상들과 하나님의 전심전력
대체로 가로등은 가로수의 등 뒤에 서는 성향이 있었다 어쩌면 가로등은 가로수의 척추인 것이지 나는 가로등과 가로수가 겹치는 저녁을 자주 사랑했다 저녁이 되면 가로수 옆에서 가로등은 빠알간 열매처럼 심장처럼 익어 이 심장으로부터 혈관 같은 가지들을 통하여 불빛이 나무의 온 형신에 전해지는 것이었다
___헤이그와 델프트를 오가던 트램 안에서 돌리던 트랙리스트가 있었다 그 당시 여정에는 어떤 새로운 트랙이 없었고 나는 랩탑을 소지하지 못한 객이어서 동일한 음원들이 아이팟 안에서 익숙하게 소용돌이쳤었고 헤이그와 델프트 사이를 장난처럼 오가는 1번 트랙 트램 안에서 북유럽 밴드의 1번부터 20번 트랙까지를 돌리며 놀았지만 서울에 돌아와 아이팟이 집에 동기화되어져버리는 바람에 헤이그와 델프트의 트랙은 탈선하고 북유럽의 소용돌이는 배수된 것이었다 / 헤이그와 델프트를 오가던 트램 안에서만 돌리던 트랙리스트가 있었고 나는 밴드의 다음 앨범을 서울에서 넣어주었다___
While the kids are rolling floor with drooling spittal & tear Daddies are rolling avenues with drooling beer In the city which is whole-covered by old cars like fallen leaves Boys and girls are dating with their own bottle 22th Sep. Ternopil base
비 오는 날은 여름의 시원한 틈. 우산을 쓰고 빗방울이 우산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지직, 지지직 엘피판 소리가 났다. 그대가 쓰고 있는 우산을 올려다본다면 축음기의 나팔입구 모양을 한 우산의 내부가 보일 것이다. 그곳은 소리가 방출되는 외부이자 너의 외부를 감싸는 우산의 내부다. 아스팔트가 비에 젖어 검게 반들반들하다. 이제 보니 그대는 엘피판 위 바늘과 같은 인생. 지금은 어느 땅을 탐색하며 그곳에서 어떤 음악을 축음하고 있느뇨. 빗 속에서 그대의 사지_팔다리_가 조금쯤 젖는 것은 낭만적으로 권할 만한 일. 비에 젖어 거멓게 반짝이는 밤의 아스팔트를 보며 엄숙히 울렁이는 자궁의 X-ray를 생각한다. 아마도 태아는 양서류에 가까웠고 우리는 원초적으로 물이 편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