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질그릇에 담긴 보물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질그릇에 담긴 보물

jo_nghyuk 2011. 7. 11. 19:51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 완전해진다는 것 (고후 12:9)을 기억한다면, 오류 투성이인 인간을 하나님의 계시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가운데 여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피조물의 상황에 자신을 맞추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성을 존중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청하신다. 계시의 빛은 위로부터 수직적으로 우리에게 떨어지기보다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세상적인 매게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데, 성령께서는 책임적인 해석과 비판적인 수용의 과정에서 인간의 참여를 유도하신다. 계시에 대한 모든 인간의 증언이 모호성과 왜곡의 위험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계시가 수용되는 과정을 변증법적인 과정 dialectical process 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니엘 밀리오리, 기독교 조직신학개론, 70p

하나님의 능력은 강한 가운데에서 완전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가운데에서 완전하여진다. 연약함 가운데에서도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일하는 것이 성도가 취할 자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언제나 그런 연약함에 기대어 나약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변증법적인 피드백 feedback 을 통하여서 연약함으로부터 강함 가운데로 나아가는 스텝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연약함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요, 강함을 주장하여 인간을 기계처럼 강인함에 맞추어 사는 강압적인 방식도 아니라, 오직 지금 여기 나의 모습 그대로인 실존으로부터 놀라운 능력의 자리, 거룩함의 자리로 한발 한발 baby step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God is kind but not soft 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계산하시고 그곳에서부터 출발하도록 그 자리의 상황에까지 함께 내려오시는 은혜와 겸손의 하나님이시지만, 정체되어 있는 자기반복적인 모습에는 엄격함을 보이는 아버지요 튜터 tutor 가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단은 겁먹을 필요가 없다. 두려움을 사랑과 은혜가 모두 몰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안일해져서도 더욱 안될 것이다. 은혜는 각 사람에 대한 균형이다. 연약함 가운데에서 은혜를 의지해서 한발 한발 걸어가야 하는 것,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경외하는 것, 나태하지 않으면서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럼에도 하나씩 행동과 사고양식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가며 변증법적인 사다리를 완성해가는 것. 
야생의 동물도 자신이 놓친 먹잇감에 대해 자신의 행동양식을 성찰한다. 완성되지 못한 것, 미완의 것에 안주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