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예수 (2)
저녁의 꼴라쥬
십자가는 선택하는 것이다. 넓은 길 가운데서 좁은 길목으로 들어서는 기점을 선택하는 것. 그것은 성별된 고통이다. 그러나 사실 십자가의 길은 초대에 가깝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탁자에 놓여있는 부담의 초대장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편안한 삶을 뒤로 하고 불편한 순례를 따르는 것이다. 십자가는 따르는 것이다. 불편한 제자의 길을 따르는 것. 그러나 온전히 항복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십자가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도, 이미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예수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이 십자가는 우리의 길에 있어 제약이 될 것이고 약함이 될 것이다. 약함과 장애,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것. '이 땅에서' ..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신다. 그러나 이방인인 나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영, 양자의 영을 주심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이 아람어인 아빠,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방인 조차도 그리스도의 품 깊숙한 안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품 안으로 성령으로 인해 우리가 안겨질 수 있다는 선언이 되어준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 아들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제 양자는 개인적인 감격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큰 공동체적인, 너와 그를 모두 초청하는 우리로서 껴안으며 함께 "아버지"를 부르는 더 튼 가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