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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아이슬란드로, 구정 연휴에. 미치지 않고서야. KLM 네덜란드 국적기 안에서 haring(청어)에 감자가 곁들여진 기내식을 받으며 되뇌였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광막한 피요르드, 무심하게 떠 있는 유빙, 날선 바람이 부는 빙하 협곡을 하이킹하거나, 발 아래가 펄펄 끓는 휴화산 지대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라지고 있는 유라시아 지각 판 사이를 달린다든지, 하는 모습을 뜬금없이 상상해버린 이후부터는 뇌리에서 곧잘 떠나질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도 ‘아주 추운 겨울 시즌에만 오로라를 볼 수 있다’라는 어떤 블로그에서 읽은 코멘트가 자꾸 떠올려졌다. 하지만 분명, 대한민국 국민 아마도 전원이 자국 내에서만 바삐 움직일 이 설 연휴에, 비수기 티켓을 끊고 북극권으로 혼자서 간다는 그 행위 안에는 말..
산은 높은/ 하늘에 입맞추어 주고/ 파도는 거칠게 내리치는 서로를 포옹을 하며/ 햇빛은 식어버린 대지를 따스히 보듬어주고/ 바람은/ 근심에 가득 찬 한숨을 가리는 키스를 하는데/ 나 자신조차 홀로/ 외롭게 서있는 늑대를 사랑할 수 없네/ 요즘은 셸리의 시를 읽고 있다. 국어 시간에 바이런을 읽고 나는 방과후 바로 반디 앤 루니스에 가서 여러 낭만 시인들의 시집을 촤르륵 촤르륵 핥아보다가 놀라울 정도로 천재적인 영감이 깃들인 시 한 편을 셸리의 시집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바이런도 좋았지만, 묘사의 섬세함에 있어서는 셸리가 더 우월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 섬세함 때문에 그리고 그의 이름 때문에 시를 반 정도 읽다가 시집 뒷부분에 달린 해설을 읽기 전까지는 이 시인이 여류 시인인 줄 알고 있었다. 어쨌든..
7시 40분,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졸린 눈으로 나는 머리부터 감는다.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얼굴에 물을 묻히는 것은 아직도 부담스럽다. 아직은 의식과 외부세계가 접점을 찾지 못한 시간이라, 샴푸를 하는 동안 나는 의식이 깨어날 만한 유예기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세수를 하면 곧바로 7시 50분, 집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간다.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밤새 야간근무를 하신 점장님이 빨간 눈으로 나를 맞는다. 어, 잘잤어 민혁씨? 네, 피곤하시죠. 나는 밤새 빠진 과자와 음료수, 컵라면 등을 얼핏 확인하고 바로 창고로 들어간다. 창고 안은 어둡고 수많은 식품들로 가득 차 비좁다. 창고에 있는 컵라면 박스를 뜯어 몇 개의 라면들을 벽돌처럼 안고 진열대로 나와 나는 차곡차곡 컵라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