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오른쪽 그림은 바니타스라고 하는 정물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왼쪽 그림에는 포동한 아이가 마른 해골펴를 지배하고 있다. 로마인의 모습처럼 그는 해골 위에 (조상 위에) 앉아 있다. 그 해골은 아이가 기어나온 집이기도 하다. 비누방울을 아이는 날리고 있는데, 방울은 아이의 살처럼 포동하다. 북실한 아이의 머리타래의 풍성함, 머리 위에는 곱슬을 닮은 구름이 떠있다. 풍성하다. 아이가 부는 비눗방울은 곧 터지게 되어있다. 아이는 알지 못한다. 그는 비눗방울을 불고 있지만 그가 기댄 해골처럼 그가 부는 것은 곧 파이프담배의 연기가 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비눗방울 같은 그의 눈 역시 텅 비게 된다. (우측의 해골 정물을 보라. 튤립도 살도 모래시계도,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죽음의 법칙이..
당나귀에 대한 설명 당나귀는 동물분류학상 말·얼룩말과 함께 말속(屬)을 형성하고 있다. 당나귀의 기원은 가축화된 것과 야생의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야생의 것에는 아프리카 야생당나귀와 아시아 야생당나귀가 있다. 아프리카 야생당나귀는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남부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 몸의 크기는 큰 개 정도이며 좀더 큰 것도 있다. 힘은 세지만 성질은 소심하다. 아시아 야생당나귀는 시리아 ·아라비아·이란·티베트·몽골 등지에 살고 있다. 몸의 크기는 대체로 말과 당나귀의 중간 정도이다. 다윈은 아프리카 야생의 누비아당나귀(E.a.africanus)를 오늘날 당나귀의 선조로 취급하였는데, 켈러는 아시아 야생당나귀를 당나귀의 원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현재는 아프리카 야생당나귀가 가축화된 것이라는 게 정설화되어 있..
얼룩말처럼 얼록덜록한 치아를 가진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_ 그랜드 피아노가 잘 빠진 곡선을 가진 다리로 아트홀 강단 위에 귀족의 말처럼 세워져 있었다. 그 검은 말의 하이얀 치아 위를 암사자 다리처럼 피아니스트의 손가락들이 맹렬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자가 얼룩말을 무자비하게 뜯어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반대로 검은 말의 티쓰teeth가 연주자의 핑거finger들을 마구 물어뜯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저, 그녀의 닳아헤진 손톱들.) 이렇게 연주자와 악기가 죽을 각오로 각축을 벌이는가 하면 어느새 둘도 없이 상냥한 연인들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건반은 어느새 연주자가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흑마의 갈기가 되어 있다. 이 둘이 실로 나에게 부부를 연상시켰던 것은 ..
연인들 혹은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여 서로의 관계가 의식과 경계의 국경에 있는 두 남녀가 주고 받는 메시지mms는 가만보면 서신교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화학적인 피드백feedback에 가까울 때가 참 많다. 연인들은 상대방의 메시지가 가지는 기의signifie보다는 상대의 기표signifiant가 '지시하는 것'이 아닌 '암시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두 연인이 주고 받는 mms는 그저 넘쳐나는 기표이며 기호일 뿐이며, 그 기호들은 오직 만남을 향한 화살표들arrows 뿐인 거다. 서로는 상대방의 심장에 계속해서 그 화살들을 꽂아대고 화살이 꽂히는 그 쾌감들이 "연인이 되기 전" 단계에서 모든 포스트_연인post-lover들이 가장 짜릿해하는 감정이요 탐닉하고 천착하는..
4월 17일 지하철 택배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바로 편하게 지하철을 그대로 타고 길음역으로 오는 방법을 나는 선택했는데, (사실 나는 길음역을 통해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아무리 빠른 걸음으로 축지법을 써도 13.5분 정도가 걸리는 지하철역과 교회의 애매한 거리 때문이었다. 마을버스 두어 정거장은 거뜬히 먹어치울 거리.) 이 날은 이렇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역에서 교회로 오려면 현대 아파트 단지를 반드시 돌파해서 와야 하는데, 아파트 단지를 꽃들이 화관처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보행과 독서를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잠시 베르테르의 서신에서 눈을 떼어 꽃들 위에 어스름이 슬그머니 내려앉고 있는 현장을 포착하게 되었다. 아직은 책을 읽기에는 충분한 자연광이지 않은가, ..